일본의 민간두뇌집단멤버가 주축인 행정개혁추진심의회는 최근 흥미있는
보고서를 하나 내놨다. "일본의 개혁,21세기의 비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자료이다.

이 보고서는 일본의 현처지를 이렇게 조명하고 있다.

"90년대 일본의 환경은 제2차세계대전후와 비슷하다. 당시의 일본은
러시아혁명기로 침략위험도 없었으며 영일동맹해소로 자유스런 입장이었다.
1차대전이 끝나고 보니 일본만이 이익(채권국)을 본 결과가 돼 각국의
시샘을 받게 됐다"
그런가운데 제1차대전후 일본은 정치 방향타를 잘못잡아 세계로부터
고립당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반추하고 있다.

행정개혁추진심의회는 결국 이런 국제정세변화에 정치적 대응을 잘못하면
또다시 시행착오를 범할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실 일본국민들이 자민당일당지배에 식상해 있는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제1류,정치3류"라는 비난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잇단
뇌물제공사건,각종정경유착은 정치적인 관심을 가속시키고 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사상최저인 투표율60%대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 준다.

이런 와중에서도 7.18 일본 총선에서의 신당들은 현상타파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반란"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정치평론가들은 선거제도가
만약 소선거구제이고 유세기간이 길었다면 자민당은 사회당이상의 참패를
면치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정치는 이제 변화와 개혁이 최대의 이슈가 됐다. 변화와
개혁은 단지 정치부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경제 사회는 물론
국제관계까지 전분야가 대상이 된다.

이번 선거에 의해 일본은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지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된것이다. 야당연립정부가 들어서면 말할것도 없지만 자민당이 계속
집권하더라도 개혁을 추진해야하는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전후세대가 무려 1백47명이다. 이는
종전선거시의 71명보다 2배이상 늘어난 것이다. 5백11명정원인
중의원의원의 약 3분의1에 해당한다. 그만큼 정치권에 대한 변화압력은
강해졌다고 할수 있다.

개혁의 1차대상은 물론 정치개혁이다. 그것은 중의원해산
자민당분열,이번 중의원선거의 쟁점이 정치개혁이었기 때문이다.
정치개혁의 목적은 민의가 그대로 정치에 반영되도록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것은 곧 일당의 장기집권이나 담합정치가 가능한
다당제가 아닌 양당제가 가능한 제도개혁이다. 그래서 완전소선구제나
소선거구제에 비례대표제를 가미한 소선거비례대표병용제등이 원점부터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개혁등 일본의 내정문제 못지않은 현안은 경제대국 일본의 국제적인
"위상재정립"이 과제이다. 이제 일본은 좋든 싫든 국제사회에서
경제대국에 걸맞는 역할과 책임을 다하도록 강요받는 시대가 됐다. 지난
선진7개국(G7)동경정상회담은 이러한 국제국가 일본의 존재를 잘 보여준
예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가. 일본지식인들사이에서는 "국제화 음치
일본"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국제화 글로벌화를 되뇌면서도 실제로는
국제화조류에 뒤져있다는 비아냥이다. 정치 경제평론가들은
자유무역체제하에서 최대의 혜택을 누려 제1의 흑자대국이 됐으면서도
수평분업이나 기술이전에 인색하고 자국산업보호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국제공헌이나 협력관계보다는 자국이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지역이기주의"가 강해 세계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몸집은 크나 머리가 극히 작은 공룡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만큼 "우물안 개구리"식의 철학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평론가들중에는 그 원인을 이렇게 평하기도 한다.

"전후 일본은 구미를 따라잡자. 구미를 떼어놓자는데 최고의 목표를 두고
달려오다보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외국이 인정하는 일본의 존재보다 일본을 과소평가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제 일본인들은 성장한 자신의 모습에 놀라는 꼴이 됐다는
것이다.

일본정치권에서도 이런 일본의 국제적인 위상 재정립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전후 일본정치의 근간이 되는 평화헌법의 개정문제
미일안보체제의 수정문제 PKO등 국제공헌문제 유엔상임이사국가입논의등은
그러한 예에 속한다.

평화헌법논의는 그동안 금기사항처럼 돼왔다. 헌법을 개정하자면
"천황제옹호자""초애국주의자"라는 비난을,호헌론을 주장하면
"좌익분자"라는 오해를 들어 온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금기사항이
깨지고 있다. 분명 새로운 변화의 시도이다.

오마에 겐이치 매킨지저팬회장같은 이는 평성유신회등을 결성,일본개혁을
위한 의식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또 신생당의 오자와이치로 대표간사는
"일본개조계획"이라는 책을 내 정치개혁구상을 피력했다.

이는 정치개혁이자 일본위상을 재평가하려는 시도로 보여진다. 그것은
결국 21세기의 국제국가 일본이 되기 위한 체제정비작업이다.

일본위상재정립작업은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 군사대국화도 나타날수 있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동경=김형철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