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우리나라의 전자공업은 유치단계이므로 1)연구개발 2)양산체제 확립
3)생산의 합리화등에 중점을 두기로했다.

연구개발은 개발대상품에 대해 개발 담당자를 지정하고 개발목표 연도를
정해 놓고 시작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연구개발에 있어 이러한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시간만 질질 끄는 것이
연구소의 습성이다.

새로운 물건을 발명하라는 것도 아니다. 외국에서 이미 생산되고 있는
물건을 국내에서 모방 생산하는 기술을 연구하라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외국에도 가보고 견본을 분해해서 만들어 보아야한다. 개발비는 정부에서
필요한 만큼 보조하겠으니 자신있는 사람이 책임지고 하라는 의미였다.

양산체제의 확립을 위해서는 대상품에 대해서 업체를 정하기로 했다.
한품종에 한업체일 수도 있고 여러업체도 있을 수 있다. 기술은 외국에서
도입해도 좋고 자체 해결해도 좋다. 연구소의 협조도 받을수 있다.
어느해(목표연도)에 얼마(생산량,수출액)를 생산하게끔 책임져야 한다.

공장 짓는데 필요한 자금은 정부에서 융자해 주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
"목돈" 미리 결제받기로
생산의 합리화방안으로는 품목별로 누구든지 성능이나 품질을 개선하거나
생산비 절감 합리화 방안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책임지고 실시하겠다면
생산합리화자금을 융자해 주기로 했다. 한마디로 정부에서 돈을 줄터이니
업자(연구기관포함)는 전자제품을 개발하고 공장을 지어 좋은 물건을
값싸게 만들어 수출하라는 전략이다. 제조업체용으로 1백24억원,연구및
진흥기관에 16억원등 모두 1백40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당시 이만한 금액은 천문학적인 것이다.

연도별로 지원 방안을 세우고 대통령에게 브리핑할때 미리 결재를 받아
놓기로 했다.

그렇지않으면 예산당국에서 깎아 버리기 일쑤여서 이에 대처키로
한것이다. 이것이 나의 "목돈작전"이다.

전자진흥 방안의 골격을 다듬은 후에는 마지막으로 수출계획을 짰다.

우선 전자기기 부문에서는 69년도에 8백만달러를 수출하고 71년
2천2백60만달러,76년 1억6천만달러어치를 수출키로 했다.
전자부품부문에서는 69년에 3천4백만달러,71년 7천7백40만달러,76년
2억4천만달러로 늘려 나가기로 했다. 전자부문의 총수출을 69년에
4천2백만달러,71년 1억달러,76년 4억달러로 8년계획 기간중(실질적으로는
7년반) 10배가까이 늘리자는 방안이다.

전자기기수출비중을 69년도 전자제품 총수출의 19%에서 76년에 40%까지
올려 놓는것으로 짰다. 영세하기 짝이없는 전자기기산업을
육성,국제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전자공업의 단지화계획도 세웠다. 어차피 전자공장을 새로 지을바에야
한단지에 위치하는 것이 부품공장이나 조립공장간에 서로 협력할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본것이다. 이것은 후에 구미전자공업단지 조성의 시발점이
된다. 그외에 계열화 산학협동 전자공업협동조합육성방안도 수립했다.

외국기업도 적극유치
외국기업의 적극 유치방안도 강구했다. 외국기업체의 1백%투자,기술료
지불문제등에서 정부의 까다로운 절차가 개선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여하간 브리핑 준비는 완성됐다. 김정 상공부장관은 이 보고를 다 듣고
나서 "됐어. 모두 수고했소"하며 만족하는듯 했다. 그리고는 웃는 얼굴로
나를 쳐다 보면서 "오실장,청와대 브리핑은 당신이 수고하소"라고
하지않는가. "아차"싶었다. 내소관도 아니고 브리핑 자료를 도와준
것뿐인데 청와대 브리핑까지 대타로 하라니 말이다.

당시 공무원들은 박대통령앞에서의 브리핑을 고역중 고역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피할수 없으니 할수없이 하게되는 것이었다.

자료가 완성된 후에도 브리핑하려면 어떻게 설명해야 효과가 클 것인지
생각을 많이 해야한다.

더구나 이번 전자공업육성에 대한 브리핑을 잘못했다가는 기합을 받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전자제품 수출이 계획보다 뒤져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2년반밖에
남지않은 71년에 1억달러어치를 수출하려면 시설을 보충하지않는한 현재의
시설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있었다.

솔직히 이러한 시점에서 브리핑을 해달라는 김장관의 말은 야속하기도
했다.

아무 대답도 안하고 있으니 김장관은 "브리핑은 내일이오. 푹 자고
멋있게 설명하소"하고 나가버린다.

브리핑하는 날이다. 장소는 청와대 별관2층 회의실로
김학렬경제기획원장관을 비롯 관계장관들이 배석하였다. 브리핑은 좀
긴장된 분위기에서 시작되었다. 첫장을 들추었다. 요점은 "1976년에
4억달러를 수출하겠습니다"이다. 자신있게 말해야 한다. 브리핑
첫마디에서 긴장감을 주어야 다음이 수월해진다. 나는 그때까지는 꽤 많은
브리핑을 해서 좀 요령이 생겼을 때이다. 특히 박대통령앞에서의
브리핑에는 요점이 명확히 나와야한다는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요점이란 군대식 육하원칙으로 우선 목표가 뚜렷해야한다. 이 대목이
박대통령 마음에 들어야한다.

그래서 "4억달러 수출계획"이란 문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1억달러
수출계획이라면 김이 빠진 맥주와 같아진다.
6하원칙이 Why이다. "무슨 목적의 브리핑이냐"를 꼭 숫자적으로
표시해야한다. 어설픈 구호로는 설득력이 없다. 다음장으로 넘겼다.
개발품목 일람표이다.

여기서 What이 나오는 장면인데 이때가 브리핑의 출발이다. 출발이 잘
되어야 시나 문장이 이어져 가기 쉬운것같이 브리핑도 마찬가지 요령이다.

나는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브리핑 첫마디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수많은 브리핑의 내용은 거의 잊었는데 이 장면 만큼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전날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아니면 상공부 입장
때문이었을까.

부품국산화 서둘러야
나는 설명을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전자공업은 황무지와 같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라디오나 TV를 수출한다고 하는데 적자수출입니다. TV
한대 수출해서 40달러를 받습니다. 그런데 TV 한대를 만드는데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원자재와 부품값이 36달러,즉 90%나 차지합니다.
TV 한대를 수출할때 우리나라에 떨어지는 외화가득액은 단돈 4달러 입니다.
이 4달러에서 조립하는데 여공에게 주는 인건비,땜질하는데 필요한 재료등
각종 재료비 전기값 공장관리비 포장값 그리고 내국수송비 선적비 보험
기타등등을 모두 지불하게 됩니다.
그러니 적자가 되는 것입니다. 값을 단돈 2달러라도 올려 받으면
외화가득액이 50%나 증가하게 되는데 딴나라와의 경쟁 때문에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트랜지스터나 IC가 수출되고 있으나 외국회사에서 모든 자재를 들여다가
여공들이 가공만 해서 도로 그 회사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들
외국회사는 국내에 1백% 단독투자한 회사들입니다. 그러니 트랜지스터나
IC를 미국에 있는 모회사에 가지고 간후는 값을 얼마를 받든 우리나라는
상관할바가 못됩니다. 이래서 우리나라는 여공들의 임금만 챙기게 됩니다.
이 임금만이 외화가득액이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나라의 전자공업은
아직까지 여공들의 인건비만 챙기는 업종입니다"
여기까지 설명하고 나는 박대통령을 쳐다 보았다. 눈살을 찌푸리는것
같았다. 나는 "됐다"하고 곧 설명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전자공업을
수지맞는 사업으로 이끌어 가야 하겠습니다. 그 방법은."하고 잠시 말을
끊는다.

관중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여기 한 예를 들겠습니다. 이
도표에 라디오나 TV에 쓰이는 스피커가 나옵니다. 이 스피커는 지금까지
모두 수입해 써왔는데 우리나라에도 공장이 섰습니다. 그 공장에 물어보니
최신시설을 갖추게 하고 생산량만 많아진다면 현재 수입하는 값의 50%까지
떨어뜨릴수 있다고 합니다. 책임지겠다고 합니다. 기술도 차차 높아지고
있으니 품질면에서도 외국제품과 경쟁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런식으로
부품 하나하나를 국산화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산품이
없으니 외국회사가 터무니 없는 비싼 값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설명으로 해결방법의 실마리를 푸는 것이었다.

"이 도표는 금년(1969년)부터 1971년까지 집중개발 해야할 품목의
목록입니다. 당장 시급한 품목 62개를 골랐습니다. 즉 전략상품입니다.
이 품목을 "개발하고" "공장을 짓고" "수출하겠다"는 기업가가 신청을 하면
엄선해서 지정하고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앞으로는 기존업체라고 해서
덮어 놓고 보호하는 식은 지양하겠습니다. 좋은 물건을 값싸게 만들어
수출하겠다는 업체중심으로 끌고 가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나라도
전자공업의 기반이 구축되고 수출경쟁력이 생기게 됩니다"
대충 이런식의 브리핑이었다. (여기서 What은 무슨 품목을,Who는 공장을
짓고 수출하겠다는 업체,When은 1969~1971년 3개년계획,1972~1976년
5개년계획을 합해서 8개년계획 기간내 즉 Why,What,Who,When까지가 설명된
것이다) "자유무역지구" 발상도
Where는 전자공업에서는 큰 문제가 안된다. 공장건설지 선정에 큰 제약이
없는 공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자 공업단지가 필요하다는 점과 가능하면 자유무역지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만 제시하였다. 앞으로 생기게 되는 구미전자공단과
마산수출자유지역의 발상이 여기서 나온다.

기타 여러가지 상세한 설명이 계속되었다. (이때의 브리핑 자료는 책을
낼때 부록에 싣겠다)
마지막으로 Who,즉 지금까지 전자공업이 이 지경으로 남아 있는데 대한
변명을 하고 앞으로 전자 공업을 육성하는데 필요한 지원책(자금)이
마련돼야 한다고 결론을 맺었다. 이런 대책안이 나왔는데 "자금이 있어야
하겠습니다"라는 대목으로 사실상 박대통령의 재가를 요청했다.

당시로서는 막대한 자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