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다"는 단어만큼 우리민족의 품성을 잘 나타낸 말은 없는것 같다.
옛 설화들속의 선인들은 비록 물질의 궁핍은 겪었으나 정신만은 느긋했던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들,특히 도시민들에게는 "느긋"이란 말이 오래전에
사어로 변하고 말았다. 매일의 삶속에 느긋한 모습이란 바닷속에서
바늘찾기만큼 어려워져 버렸다. 오랜만에 모국을 찾은 해외동포나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한국사회의 참지
못하고,성급하며,초조해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못한다. 호텔같은데를
가보면 종종걸음으로 쏜살같이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대개가 우리쪽
사람들이다. 호텔들의 엘리베이터에서는 단 1,2초를 못기다려 문닫이
버튼을 눌러댄다.

자동차로 뒤범벅이 되어버린 차도는 말할 나위가 없다. 틈만 있으면
비집고 끼어드려는 성미급한 얌체족에다 이들에게 뒤지지 않을세라 앞차의
뒤꽁무니에 주먹만한 공백도 두지 않고 달리는 절묘한 운전솜씨에서
"느긋"이란 여유는 아예 없다. 1,2초는 커녕 0.1초의 양보도 상상할수
없는 교통전쟁이 전국의 대도시에서 매일 매시간 펼쳐지는 모습들이다.

그런데 경찰청이 급하고 못참는데 이골이 난 우리들 도시민들에게
횡단보도의 "남는시간 신호등"이란 새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횡단보도에서
"초조히"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신호가 바뀔때까지의 시간을 숫자로 보여
주겠다는 것이다. 시험기간을 거쳐 반응이 좋으면 전국 6개도시
1만2,000여 신호등을 모두 갈아치울 심산이다.

세계 어느곳에서도 볼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임에는 틀림없으나
3,2,1초로 숫자가 바꿔질때마다 행인들의 조바심은 더욱 자극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인공위성을 발사할때마다 보아온 마지막 초읽기의 긴박감을
횡단보도에서까지 겪어야 한다면 벌써부터 손에 땀이 집히는 느낌이다. 이
신호기의 제작비는 대당110만~180만원이나 든다니 그 엄청난 비용(적게잡아
150억원)은 또한 누구의 몫으로 잡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모처럼
조급증세로 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목덜미를 한층 더죄이려는 것은
아닌가. 지난 시절에 있었던 "신호등비리"의 전설은 되살아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