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의 미.북한 회의에서 지난19일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협상재개는 물론 남북대화도 빠른 시일내에 재개키로 약속함으로써 정부는
남북대화의 시기와 형식을 놓고 수차례의 통일관계 고위전략회의를
개최한바 있다.

정부입장은 남북회담시기가 빠를수록 좋고 형식은 특사교환도 좋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북한이 조속한 시일내에 회담을
제의해 오지않을 경우 우리측이 먼저 제의할수도 있다는 태도를 정리하면서
성급함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핵문제는 시간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빠를수록 좋지만 북한의
태도로 보아 결국 남북대화 전체의 테두리와 진전속에서 이루어 질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새정부는 차제에 남북대화에 임하는 입장을
한번 신중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비단 현정권뿐만 아니라 우리는 과거에도 관계장관만 바뀌어도 앞의
정책은 모두 백지화시켜 버리고 한건위주식의 새로운 정책과 회담형식을
들고 나오기 때문에 북한에 비해 통일정책이 전략도 없고 중장기적 정책도
없다는 비난을 들어왔던 것이다. 그러한 양태가 신정부하에서도 되풀이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남북대화의 궁극적 성패는 상호신뢰구축을 어떻게
이룩해 가느냐에 달려있지 시기와 형식은 중요하지 않음을 알 수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신뢰를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달려있다.

두말할 나위없이 신뢰란 과거의 약속을 지키는데서부터 구축될수 있다.
우리는 1년반동안 다섯차례에 걸친 남북총리회담끝에 91년12월14일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해 낸바 있다. 그리고 온 국민이 지켜보고
최고통치자의 지시하에 기본합의서를 이끌어 냈을 뿐아니라 남북양측이
의회의 동의를 얻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비밀특사에 의해 밀약된
7.4공동성명과는 달리 남북기본합의서는 엄연히 조약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비록 내용이 미흡하다해도 이를 지키고 이에 기초해서 남북협상을
계속 발전시켜가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이다. 이는 중요문제를 계속
협의해갈 수 있도록 정치 경제및 군사분과위원회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합의된 사항의 이행을 위해 정치 경제 군사는 물론 특히 핵통제위원회와
같은 공동위를 두어 정책협의와 이행의 2중궤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때문에 남북총리회담을 재개하고 공동위원회를 재가동시키는 것이
빠른 시일내에 실질적 협의를 재개할수 있는 최선의 형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새로운 형식의 고위급회담제의는 무엇이며 특사교환제의
용의는 무엇인가.

물론 당국자는 강변할 것이다. 북측이 기본합의를 지킬 의사가 없고 이에
기초한 회담의 재개를 거부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바로 여기에 우리의
문제점이 있다. 북한이 지키려하지 않는다고 우리까지 이를 거론도 하지
않고 새로운 형식을 제의한다면 그러한 새로운 형식에 기초한 약속을
북한이 지킬 것이라는 보장은 누가 할것인가.

북한은 지금 정치 경제및 핵을 포함한 군사적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룸은
물론 정상회담의 추진을 위해서 특사를 교환하자는 제의를 하고 있다.
그토록 국민의 기대를 끌었던 남북기본합의서와 그들이 일방적으로
지연(취소)시킨 제6차총리회담은 언급조차 하지않고 또다른 술수를 쓰고
있다. 본래 정상회담은 실무진에서 모든 문제가 합의되고 이에대한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상징적 의미가 강한 것이다.

따라서 정상회담은 실무진에 의한 실질적 합의가 전제된 이후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남북협상의 실질적 협의통로는 이미 5차까지 치른
총리회담이 있고 핵문제만도 십여차례나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무슨 새로운 특사교환인가. 남북대화를 아직도 대내외적
정치선전물로 이용하려는 북측의 의도가 너무 자명한데 현재 당국자는 이에
말려들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북한에 대해 남북총리회담의
부활과 기본합의서의 합의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강력히 촉구하고
의연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핵문제는 분초를 다투는 화급한 문제인데 북한이 협상에 응할때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 수만 없지않는가라는 질문이 의당 제기된다.
북한이 조속한 시일안에 기존의 대화형식과 합의내용의 실천에 응해오지
않을 경우 핵문제는 오는 9월의 국제원자력기구총회와 유엔의 정기총회를
통해 제재조치를 취하는 국제적 공조의 틀 속에서 다루어 나갈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남북대화에 임하는 우리의 태도가 확고부동함을 북한에
보여주고 북한의 과거와 같은 협상형태는 새로운 문민정부하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임을 시간을 갖고라도 보여주어야 한다.

통일문제에 관한 섣부른 감상적 민족주의적 발상은 금물이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속에서 신정부의 노동정책이 혼선을 빚은 대가는
1조2,000억원이라는 매출손실이다. 그러나 대북정책의 혼선이 빚을수 있는
대가는 하나뿐이고 한번뿐인 국가안보 그자체임을 당국자는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