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7일 미디지털 이퀴프먼트사의 이사회장. 경영진의
회사재편계획이 발표된 이날 이사들의 환호와 박수소리가 회의장을
압도했다. 지난 3년간의 누적적자로 경영위기설마저 나돈 이회사로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날 박수와 환호의 주인공은 로버트 팔머
사장이었다. 디지털 이퀴프먼트호의 키를 잡은지 약 1년만에 팔머사장이
이사회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는 순간이었다. 디지털 이퀴프먼트의
이사이며 포드자동차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던 필립 칼드웰은 이날 이사회
분위기를 "디지털 이퀴프먼트의 미래에대한 재확신의 자리였다"고
요약했다.

이날 이사회의 활기찬 분위기는 1년전 같은 무렵의 이사회 분위기와는
큰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당시 이사회는 필립 칼드웰을 비롯한 이사들이
경영진을 성토하는 장이었다. 디지털 이퀴프먼트의 창업자이며 당시
사장이었던 키네스 올슨은 결국 이 이사회를 계기로 경영악화에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자리에 제조를 총괄해온 팔머가 들어선 것이다.

도시풍의 차가운 인상을 지닌 52세의 팔머사장은 전임 사장이 주저했던
대규모 비용절감계획을 과단성있게 추진했다. 이에따라 전세계 디지털
이퀴프먼트의 직원은 11만5천명에서 9만5천명으로 2만명이나 줄어들었다.
대신 재능있는 외부인사를 영입하는데는 주저하지 않았다. IBM에서 마케팅
귀재로 알려진 에드워드 루센트가 이에따라 영입됐다. 루센트의 영입은
디지털 이퀴프먼트내에서 성장한 중역들로만 이루어진 경영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했다.

팔머사장은 또 디지털 이퀴프먼트의 미래를 이끌고갈 알파 컴퓨터의
도입에도 박차를 가했다. 알파 컴퓨터는 명령어축약형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한 것으로 디지털 이퀴프먼트의 오랜 기종인 VAX 미니컴퓨터를
대체해나가게 된다.

팔머사장의 경영전략이 효과를 발휘해 디지털 이퀴프먼트는 올해
2.4분기중 적으나마 흑자를 낸 것으로 잠정집계되고있다. 디지털
이퀴프먼트가 분기별 흑자를 기록한 것은 지난 91년 1.4분기 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디지털 이퀴프먼트는 지난 3년동안 35억달러의 누적적자를 냈다.

회사가 만성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것에대해 팔머자신도 얼마간 놀라움을
나타내고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디지털과 같은 속도로 급히
몰락해가는 기업이 정상을 되찾는 것을 본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디지털은 결코 늦지않았다"며 회사의 장래에대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그러나 디지털 이퀴프먼트가 미2위의
컴퓨터회사로서 옛 영화를 회복하는 데에는 적지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대다수 업계전문가들은 디지털 이퀴프먼트의 경영흑자 선회에관한 공을
팔머사장에게 돌리길 주저하지 않는다. 경영컨설팅 회사인 스미스 바니의
샤오 왕은 "팔머의 경영 능력과 스타일이 디지털 이퀴프먼트를
소생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러나 디지털 이퀴프먼트가 완전한 경영정상화를
찾았다고 보기에는 이르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디지털 이퀴프먼트가
경영정상궤도에 안착하기위해서는 판매영업방식의 일대혁신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하고있다. 디지털의 판매방식은 업계에서 가장 비생산적인
것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판매사원들은 리베이트 없이 급여에만 의존하고
있어 그만큼 영업실적이 떨어지고있다. 이는 디지털의 제품이
한창인기있어 정작 영업활동 없이도 물건을 팔 수 있던 시절에 정착된
것이다. 팔머사장은 오는 9월부터 리베이트제도를 도입,이를 시정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또 고객의 필요에 민감히 대응하는 판매사원의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최근 주요 고객사인 듀폰과 뱅커스 트러스트를 직접
방문,그들의 불평을 듣는 시간도 가졌다. 신제품 개발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으로 뛰는 팔머사장의 모습을 보며 업계는 요즘 디지털
이퀴프먼트의 새로 태어나기 노력이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채명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