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은행이 정주영씨가 정계에 진출했던 92년초 이후 현재까지 2년
째 현대그룹에 대한 시설자금 지원을 계속 외면하고 있어 부당한 금융제
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8일 산업은행과 현대그룹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난 2월 93년 시설자
금 2조3천억원을 현대자동차 등 현대그룹 계열사만 모두 제외한 채 각 기
업에 일괄 배정한 이후 이날 현재까지 일체의 시설자금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반면 삼성.럭키금성 등 다른 기업들은 차질없이 배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는 지난해 11월 그룹 산하 현대자동차.현대전자.현대정공.대한알루미
늄 등 7~8개 회사에서 올해 총 8천억원의 시설자금이 필요하다며 산업은행
에 대출을 요청한 바 있다.

16메가디램 생산설비용 시설자금으로 1천50억원을 신청한 현대전자는
자금배정을 받지 못함에 따라 장기신용은행 등 다른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아 지난 6월 16메가디램 1차 생산설비를 완공했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연초 일괄 배정에서 제외한 뒤 앞으로 수시
배정을 통해 자금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하고선 아직 한푼도 지원하지 않
았다"며 정부 고위층의 의사에 따라 자금 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
다고 밝혔다. 실제로 현대전자의 경우 수시배정을 기대하고 1천6백억원을
요청한 바 있으나 아직 지급되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정주영씨와 정부와의 갈등관계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할 때 현대그룹은 아직 여신적격성 면에서 소망스러운
위치에 있지 않다"고 밝혀 정부 고위층의 의사가 어떤 형태로든 개입돼
있음을 내비쳤다.

한편 현대그룹과 다른 은행과의 거래는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가운
데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은 자금융자를 여신한도 이내로 제한해 이 한도
를 넘는 신규대출은 않고 있으며 현대쪽에서도 추가 신규대출을 요청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은 기업중개어음 발행 등
제2금융권을 통해 일부 자금을 조달해 산업은행 금리(8~10%)보다 훨씬 높
은 실세금리 부담을 떠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