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을 8년이나 기다려왔습니다"
5공의 국제그룹해체는 위헌이라는 헌재의 판결이 난 29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10층에 자리잡고있는 국제그룹 복권추진 서울본부의
골수국제맨들은 감격한 나머지 손을 맞잡고 눈물을 글썽이기도했다.

이번 소송의 실무작업을 주도해온 김상준씨(해체당시
국제상사법무담당차장)는 "사필귀정"이라는 한마디로 이번의 결정을
반겼다.

그룹해체후 모중소기업에 근무하다 지난5월부터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국제복권추진본부에 상근해온 김씨는 "헌법재판소결정을 앞두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이날 복권추진본부엔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는 옛 국제가족들의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왔고 빌딩 지하다방엔 40,50대의 국제맨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해체당시를 회상하면서 새삼 비분강개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룹분해이후 줄곧 복권운동에 전념해온 박영달사무국장은 "젊음을 바쳤던
직장이 하루아침에 해체된이후 4만여국제가족들중엔 병을 얻은 동료들도
있었고 이 직장 저직장을 전전하면서 아직도 정착하지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면서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심정으로 그룹재기를 위해 뛰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국제복권소식을 라디오를 통해 듣고 상담약속을 뒤로 미루고 바로
복권추진본부로 달려왔다는 이동숙씨(오퍼상경영.해체당시
상사종합기획부장)는 "만시지탄이지만 명예를 회복하게된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그동안 불명예스럽게 망해버린 직장의 전력을 떳떳하게 밝힐수
없어 전전긍긍했던 기억을 지울수 있게됐다"면서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국제에서 닦은 토목기술을 살려 단종건설업을 하고있다는 김근식씨는
"85년2월 구정휴가를 보내고 출근하려던 아침에 TV를 통해 해체소식을 듣고
잠시 말문을 열지못했던 그날의 쇼크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면서
"70년대 고도성장기에 젊음을 던져 일했던 직장이 이제 제자리매김을 할수
있는 계기를 맞은 것이 한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국제맨들은 5공의 서슬이 살아있을 땐 복권추진엄두를 내지못하다가
6공에서 구제해줄것을 기대한 나머지 88년 추진위를 구성,본격적인 활동을
벌여왔으나 6공5년동안엔 아무런 결실을 보지못한채 오늘에 이르렀다.

<이동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