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서에는 세가지 요구조건 가운데서 세번째인 히도쓰바시요시노부를
쇼군 보좌에 임하고,마쓰다이라요시나가를 대로의 자리에 앉히는 사안을
받아 들이겠다고 적혀 있었다. 그밖의 첫번째와 두번째 요구조건은 지금
당장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니,논의를 거듭하여 후일에 원만히 해결되도록
하겠다는 답변 이었다.

그러니까 막부로서는 한걸음만 뒤로 물러서는 양보를 했을뿐,크게 체면을
손상하지는 않는 결정을 내린 셈이었다.

이미 히사미쓰는 그런 답서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몇 차례 막부로부터
보내온 협상자를 만났던 것이다. 처음에는 세가지 조건 가운데 적어도
두가지는 수락해야 된다고 주장했으나,결국 세번째 조건은 당장
받아들이고,나머지 두가지는 추후에 해결한다는 선에서 타협을 했던
것이다.

세번째 조건은 히사미쓰 자신이 직접 제안해서 천황의 칙서에 담게 된
사안이었고,그밖의 두가지는 황실에서 내세운 것이었다. 그러니까
히사미쓰로서는 자기의 주장만은 관철한 셈이어서 내심 흡족했다. 자기
편이며,죽은 미도번의 다이묘 도쿠가와나리아키의 아들인 요시노부를
쇼군보좌역에 앉혔으니 간접적으로 쇼군을 조종할수 있게 되었고,또 자기와
가까운 사이인 마쓰다이라에게 대로의 감투를 씌워 주었으니 막부에 자기의
입김을 불어넣을 수가 있게된게 아닌가. 기분이 흡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에도에 와서 막부를 상대로 하여 그런 양보를
받아냈으니,말하자면 중앙정계에 우뚝하게 두각을 나타낸 셈이어서 절로
어깨가 쫙 벌어지기도 했다.

히사미쓰는 요시노부가 정식으로 쇼군보좌에 임해지고,마쓰다이라가
정치총재(정치총재)라는 이름으로 대로와 다름없는 직위에 취임하는 것을
본 다음 에도를 떠났다. 칙사를 호위하여 다시 에도로 향하는 것이었다.

천여 군사를 거느린 히사미쓰의 행렬은 장관이었다. 올 때와는 달리
의기가 양양해진 군사들은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마치 무슨 개선장군의
행차처럼 행진을 하였다.

가교에 몸을 실은 히사미쓰는 정말 개선장군 같은 기분이었다. 가교의
창구멍 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햇살이 쏟아져 눈부시게 부서지고 있는
수평선을 내다보며 그는, "날씨도 좋군" 하고 중얼거렸다.

가교 바로 곁을 오쿠보가 수행하며 걷고 있었다.

"여보게,오쿠보"
히사미쓰는 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