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야기가 나오면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수 없다. 국토의 허리가
반으로 잘린채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젠 무언가 있어야 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족과 고향을 북에다 두고온 실향민들의 아픔이야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할수 없는 일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 역시 날로
좁아져가는 이 땅덩어리에서 질식할것 같은 느낌을 누구나 받는다. 게다가
같은 분열국의 형편에 있던 독일마저 통일의 대업을 완성하고 말았으니
외톨박이 분단국의 신세로 처져버린 우리의 처지에서 통일이 곧 전부라는
생각이 드는것은 당연한 이치다.

아데나워 전 서독총리는 패전으로 완전히 폐허화한 조국을 경제대국으로
키워 놓은것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는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한것 못지않게 동서독의 통일을 위한 기초를 다져놓은 것으로도
독일인들의 가슴깊이 새겨져 있다. 아데나워총리는 시간이 나는대로
음악회에 자주 출입했다. 음악회에 출석하는 총리에게 한 수행기자가
"악기중에서 무슨 악기를 제일 좋아하느냐"고 묻자 그는 대뜸 "지휘자가
쥐고있는 지휘봉"이라고 대답했다. 전후 복구에 여념이 없던 그에게
지휘봉 이상의 다른 악기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 "정부에서 총리가 차지하는 무게는 70%이상"라고
술회했다. 그리고 "통일문제에 관한한 100%이상이 총리의 어깨에
달려있다"고 노총리는 말했다. 아데나워총리는 그래서 각내에서는
가부장의 권위를 유지했고 담당 각료의 정책미스에는 단호히 책임을
물은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대공산권 정책에 관한한 시종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철저한
경계와 단호한 대응"을 대소련정책의 기축으로 했다. 그는 기회
있을때마다 독일통일을 위해서는 소련을 설득시켜야 하고, 그러나
"우리(서독)가 그쪽으로 가는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오도록
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약하면 죽고 강해야 통일이 온다"는게
아데나워총리의 통일 이념이었다. 그가 다져놓은 통일레일은 그이후에 별
탈이 없었다.

6공당시 노태우대통령 정부가 보여준 대북방정책과는 판이하다는
느낌이다. 대소정치인들이 특사다, 대통령친서 전달이다 해가면서
뻔질나게 모스크바 나들이를 하면서 부산을 떨던 일들이 기억에 새롭다.

일본방문을 끝내고 귀국길에 오른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대통령을 "억지로"
제주도에 끌어내려 전례에 없는 자정의 야반만찬파티를 강행한 그
억척스럽던 북방외교하며, 24시간 밖에 체류할수 없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마치 대단한 한국 경시인양 큰 소리를 해대던 우리였다. 지난번 동경에서
열린 G7에 참석했던 세계경제대국의 영수들이 전력을 다해 모금키로 한
대러시아 경협자금(30억달러)의 반에 달하는 15억달러를 말 몇마디로
고르비의 손에 쥐어준 통큰 사람들의 허세가 아직도 뇌리에 가물거린다.
그뿐인가. 6공의 임기가 다해가자 남북정상회담을 정책의 지상과제인양
마지막 순간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러방향으로 모색했다는 뒷
이야기등은 격추된 KAL기의 빈 껍데기 블랙 박스를 받아쥐고 흥분해 하던
그 순진성보다 더 딱해 보인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대북정책에 관한한 갈팡질팡이 거듭되는
인상이다. 이인모 노인의 인권은 생각하면서 북에 억류되어 있는 우리쪽
인사들과 일본에서 북송된 20만~30만명의 재일동포들에 대한 인권은 왜
고려밖인지 설득력 있는 설명이 아직 없다.

핵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더욱 애매하다. 남북 관계자회의가 하루속히
이루어져 막혀져버린 대화채널이 재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지만
국제감시기구의 핵사찰결과가 밝혀질때까지는 자제해야 마땅하다. 핵을
개발해 놓은 재고가 감추어져 있으면 파괴해야 하고,뒷골방에서 핵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패거리들이 발각되면 모두 해산시켜야 한다. 상다리
아래에 핵을 묻어두고 남북이 아무리 무릎을 맞댄들 통일에의 길이
열릴리가 만무하다.

91세에 작고한 아데나워 총리는 그의 건강.장수 비결을 "담배를 끊고 할
일을 갖고 있으며 때때로 화를 내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분단된 우리의
형편을 생각하면 화를 내지 않고 배길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