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는 들었소. 그야말로 야만적인 법제요"

"그것이 야만적이라면 그럼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짓은 뭔가요?"

"무슨 소리요?"

"얘기를 들으면 서양에서는 인간사냥이라는 것이 있다잖소. 말을 타고
다니면서 들에서 일하는 아무 잘못도 없는 원주민을 무슨 들짐승처럼 재미
삼아 총으로 쏘아 죽인다던데요"

"우리 영국에는 결단코 그런 일이 없소"

"자기 나라에서는 안그러겠지만,남의 미개한 나라에 가서 그런다던데요"

"글쎄,우리 영국사람은 절대로 그런 야만적인 짓은 안한다니까요"

"허허허.좋아요. 닐 공사의 말을 믿기로 하지요. 그건 그렇다치고,
나마무기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은 우리 나라의 법제에 비추어 보면 응당
기리수데고멘 감이지 뭐요. 다이묘의 행렬에 말을 타고 뛰어들었으니,될법
이나 한 일입니까? 행렬 앞을 가로지르기만 해도 살려두지 않는데,하물며
가교 앞으로 뛰어들었다니까."

닐 공사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오가사하라의 말을 가로막듯이 뇌까렸다.

"일부러 뛰어든 게 아니더라구요.일부러 뛰어들 턱이 있겠어요?얘기를
들으니까,사무라이가 칼을 빼들고 치려고 달려들었다지 뭐요. 그러니까
말이 놀라서 그만 정신없이 행렬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거요. 짐승이 뭘
아나요. 짐승이 한 짓인데,사람을 죽이다니."

"우리가 보고를 받기는 도모가시라가 말을 타고 구경하는 네 사람에게 말
에서 내리라고 했다는 겁니다. 다이묘가 지나가는데 말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은 불손한 짓이거든요. 그런데 내리질 않아서 위협을 하려고 칼을
뺐다지 뭐요"

"내리지 않은 게 아니라,리처드슨은 일본에 온 지 얼마 안돼서 일본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요. 프로델 부인도요. 일본말을 알아듣는 클라크와 마셜 두
사람은 얼른 말에서 내렸대요. 리처드슨도 그걸 보고 말에서 내리라는 말
인가보다 싶어서 내리려고 하는데 그만 말이."

오가사하라가 이러다가는 끝이 없겠다 싶어서, "닐 공사님" 하고 그의 말
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어찌 됐든 우리 일본의 법제에 따른다면
기리수데고멘에 해당이 되지요. 그러나 우리 막부는 외국인에게 굳이 우리
법제를 적용시킬 생각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