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남 쓰레기 풍선을 또다시 부양하고 있다.22일 합동참모본부는 "현재 풍향을 고려하면 대남 쓰레기 풍선(추정)이 경기도 및 수도권 지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합참은 "적재물 낙하에 주의하고, 떨어진 풍선을 발견하면 접촉하지 말고 가까운 군부대나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대남 쓰레기 풍선 살포는 지난 18일 이후 나흘 만이다.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
마이클 틸슨 토머스는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을 잇는 미국의 대표 마에스트로다. 창의적인 해석력과 탁월한 언변, 따뜻한 인품까지 두루 갖춰 반세기 넘도록 많은 이의 존경을 받았다.일찍이 피아노에 재능을 보인 그는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피아노와 지휘, 작곡을 배웠다. 커리어 초기 버펄로 필하모닉 수석객원지휘자로 일하며 번스타인의 주목을 받았다. 번스타인은 ‘젊은 지휘자 프로그램’에 틸슨 토머스를 참여하게 했고 뉴욕필하모닉 무대에 대타로 세웠다. 틸슨 토머스는 이후 LA필하모닉, 런던심포니 등을 거쳤으며 대학원생 음악가로 구성된 ‘뉴 월드 심포니’를 설립(1987년)했다.그는 1995~2020년 샌프란시스코심포니 오케스트라(SFO) 음악감독을 맡으며 악단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어냈다. 이때 그가 제작한 방송 ‘키핑 스코어’는 클래식 대중화에 한 획을 그었다.그는 120여 개 음반을 작업했으며 그래미상을 12번 수상했다. 2021년 뇌암 수술을 받았으며 투병 생활 끝에 포디움으로 복귀하는 투혼을 보여줬다.최다은 기자
한국경제신문이 창간된 1964년은 박정희 정부의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본격화해 사상 처음으로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한 해였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그것도 전란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상황에서, 가발용 머리카락과 코리안밍크로 불리던 쥐털을 팔아 이룩한 개가였다. 물론 1964년 수출 67억달러를 기록한 이웃 나라 일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초라한 경제력이었다. 공업화의 여명은 아직 밝아오지 않았고, 이제 막 자리 잡던 의류와 봉제공장은 비숙련 여공의 비인간적 노동으로 돌아갔다. 돈을 빌려주겠다는 일본 등의 상업차관은 넘쳐났지만 산업 원자재를 한국에 수출하거나 완제품을 저가로 본국에 가져간다는 단서 조항이 달려 수출이 늘어날수록 무역 적자도 커지는 구조였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107달러. 전체 인구의 80%가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해 글만 깨치고 나면 모두 가망 없는 농업에 매달리던 시절이었다.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은 거대한 창업국가 건설과 맥을 같이하는 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자 국민도 서독 탄광과 베트남 전쟁터, 중동 건설 현장에서 함께 뛰었다. 그리고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 신격호, 조중훈, 박태준, 김우중 같은 당대 창업자들이 있었다. 울산 창원 구미 포항 여수의 거대 산업단지를 새로운 시설과 젊은 근로자로 빼곡히 채운 것이 그들이다.미지의 바닷길을 헤쳐 나가는데 항법 장치도 없고 지도도 없었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어떤 나라도 벤치마커가 되지 못했다. 1970년 일본의 수출은 우리나라의 23배, 1975년엔 11배에 달했다. 그럼에도 한국을 돕고 지원하는 데 인색했다. 차관과 투자에는 늘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