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영제국의 황제를 대신하여 일본 주재 공사인 본인은 당신네 일본의
통치기관인 막부에 대하여 다음 세가지를 정식으로 요청하오. 첫째는."
닐 공사는 냉랭하면서도 근엄한 어조로 요구조건 세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공개적인 사과였고 둘째는 범인의 인도였으며 셋째는 배상이었다.
공개적인 사과에 있어서는 막부가 문서로 사과를 할뿐 아니라 서양인
거류지에 사과문을 게시하여 그들이 직접 읽을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그들의 흥분을 가라앉혀 또 다른 불상사를 막을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범인의 처단을 자기네 손으로 할터이니 잡아서
인도를 해야 하며 피살자와 부상자에 대한 배상은 현금으로 이십만 폰드를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닐 공사의 말이 끝나자 쿠바 제독이 불쑥 입을 열었다.

"세가지 요구조건이 다 충족되어야 참을 수가 있소. 그렇지 않으면 우리
대영제국의 해군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위협조의 말이었다.

오가사하라는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요?"라는 말이 튀어나오려
했으나 참았다. 그렇게 되면 격한 말이 오갈 것이며 자칫하면 회담이 결렬
되어 전쟁으로 치달을지도 알수 없었다. 노중으로 특진까지 시켜 회담을
자기에게 맡겼는데 일이 그렇게 되어버리면 큰 낭패인 것이다.

쿠바 제독은 다시 덧붙였다.

"첫째와 셋째 요구조건은 닐 공사께서 처리할 사안이지만 두 번째의 범인
처단은 내 소관이라고 할수 있소. 범인을 반드시 잡아서 인도해야 돼요.
그러면 내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범적으로 처단을 할
생각이오"

"시범적"이라는 말에 오가사하라는 빈정거리는 투로 물었다.

"시범적인 처단이라. 어떤 식의 처단을 말하는 건가요?" "길로틴으로 목을
자를 거란 말이오. 공개적으로." "길로틴이 뭔데요?" "허허허. 길로틴이
라는 것은 단두대(단두대)를 말하는 거요. 사형수의 목을 자르는 장치죠.
범인을 눕혀놓고 위에서 작두 같은 큰 칼날을 떨어뜨려 목을 잘라버리는
거요. 우리 서양에서 곧잘 사용하는 것인데 광장 같은데서 많은 구경꾼들을
모아놓고 집행하기 때문에 그 효력이 크죠. 그러니까 시범적이 아니고 뭐요.
내 생각 같아서는 범인의 처형을 에도성 앞 광장에서 집행했으면
좋겠는데. "

쿠바 제독은 자기가 말해놓고도 그것은 좀 지나쳤다는 듯이 히죽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