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영국함대는 뭍의 포대는 물론이고, 가고시마성, 그리고 사쓰마가
자랑하는 신식 공장인 집성관도 파괴해 버렸다. 시가지의 약 일할 가량도
쑥밭으로 만들었다.

이튿날은 간간이 위협용의 포격을 하면서 파손된 두 척의 군함을
수리했다. 그리고 그다음날 유유히 그곳을 떴다.

쿠바 제독은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가고시마 점령을 주장했으나,닐 공사가
반대했다. 시가지의 민가까지 수없이 파괴했으니, 그만하면 됐다는
것이었다. 상륙작전을 감행하면 결사적으로 덤비는 사무라이들에게 우리
수병도 적지않은 희생을 내게 될 터이고, 또 설령 가고시마를 점령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일 뿐 그들의 완강한 저항을 오래 감당해 내지
못한다고 하였다.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는 일본 사무라이들의 정신을
닐 공사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동양함대를 이끌고 남양과 중국 등지를
돌아다닌 쿠바 제독과는 일본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

그리고 포격으로 파괴만을 한 경우와 상륙을 하여 점령까지 했을 경우는
문제의 심각성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외교관인 닐 공사는 잘 알고
있었지만 쿠바 제독은 그런 것은 자기가 알 바 아니었다. 점령을 했을
경우에는 단순히 사쓰마와의 분쟁의 차원이 아니라, 막부 즉 일본
주권(주권)과의 문제로 비화가 되고마는 것이다. 그리고 무력에 의한
점령은 그것이 비록 어떤 지역에 한정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공사의 권한
밖의 일이기도 했다. 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될 사안이었다.

그래서 결국 쿠바 제독도 도리없이 포획한 사쓰마의 군함 세 척을
전리품으로 끌고서 가고시마 앞바다를 떠나 나마무기로 돌아갔던 것이다.

영국의 흑선들이 사라져 버리자,가고시마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상륙해 오지 않을까 하고 전전긍긍했었는데, 불행중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서양 오랑캐라고 욕하며 양이를 부르짖던 사무라이들도 그들 대포의
위력앞에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다고 할까,도저히 무력으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걱정들이 많았다.

중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큰 충격을 받은 그들은 곧 대책을 강구했다.
영국의 흑선들이 아마도 식량과 연료 사정으로 이번에는 이정도로 끝내고
돌아갔지만,충분한 준비를 해가지고서 다시 찾아올 게 틀림없으니,어떻게
하는 게 좋겠느냐는 의논이었다. 그자리에서 오쿠보는 소양이(소양이)와
대양이(대양이)를 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