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덕배에겐 운좋은 날이었다.

이제 겨우 세번째 방을 털었는데 미화 2천달러,일화 30만엔,그리고
차갑도록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는 10캐럿쯤 되는 다이아반지 하나를 수중에
넣을수 있었다.

그는 호텔털이 전문이었다. 투숙객이 외출한 빈 방을 못 하나로 따고
들어가서는 현금과 귀중품을 터는 것이 그의 전공이었다. 오늘은 남산 기슭
에 위치한 S호텔을 털고 있었다.

사실 그만큼 수입을 잡았으면 거기에서 끝냈어야 했다.

항상 욕심이 일을 그르치고 만다. 오늘도 그렇다. 딱 하나만 더 털자고
4번째 방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그 방은 방주인이 귀중품 간수를
어찌나 잘 했는지 벌써 3분이 지났지만 다이아는 커녕 1달러짜리 지폐한장
눈에 띄질 않았다.

방안을 이잡듯이 뒤지고 있는데 뒤쪽에서 소리가 났다. 돌아다보니 욕실
에서 맨몸에 목욕타월을 걸친 금발의 백인여자가 물기를 털며 나오고
있었다. 여자는 덕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재빨리 여자쪽에 다가가서는 자기 목을 비트는 흉내를 냈다.
영어라고는 한마디도 못하는 덕배는 보디랭귀지로 상대에게 겁을 주었다.
덕배의 연기가 훌륭했던지 여자의 얼굴은 겁에 질려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덕배는 불룩한 뒷주머니에서 달러를 꺼내 여자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듯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침대밑에서 핸드백을
꺼냈다.

그러나 핸드백 속에서 나온건 현금 20달러가 전부였다. 덕배는 이번에는
안주머니에서 보석함을 꺼냈다. 뚜껑을 열어서는 다이아반지를 여자 코앞
에 내밀었다. 그러자 여자는 욕실로 들어갔다가 진주목걸이를 들고 나왔다.

덕배가 그것을 받아 손에 쥐는 순간 문제의 동작이 발생했다.

나중에 덕배가 생각할때 그것은 의도적인 동작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우연이라고 밖에 생각할수 없었다.

여자의 몸에서 타월이 스르르 풀리면서 아래로 흘러 내렸던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의 나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리석처럼
미끈한 피부,그리고 동양여자와는 비교가 되지않는 볼륨있는 몸매,덕배는
눈이 휘둥그래져서는 침만 꿀꺽 꿀꺽 삼켰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여자의
손발을 묶고 방을 나선것은 그로부터 10분뒤.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꺼내 재빨리 호텔을 벗어났다.

그의 집은 강남 올림픽아파트에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주머니속에
있는 것을 꺼내기 시작했다. 오늘의 수입을 따져 볼 참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달러와 일화는 간곳이 없고 주머니에서 종이가
한다발 나왔다.

그는 재빨리 안주머니를 뒤져 보았다. 다행히 보석함은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까 다이아반지는 간곳이 없었다. 단지 광고종이
하나가 거기에 있을 뿐이었다. 광고에는 아까 그 금발의 백인여자 사진이
크게 실려 있었다. 광고문구를 읽고 나서야 덕배는 오늘 일어났던 달러와
다이아몬드가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을 수궁할 수 있었다.

무슨 광고였을까?
="세계적인 여류마술가 안나 카퍼필드 서울공연! 바로 당신 눈앞에서
보석함속 다이아를 감쪽같이 사라지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