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이다. 꼼꼼하고 세심한가 하면 넉넉하고 여유있는 태도로 주변을
편안하게 한다.
10년 넘게 살고있는 그의 정릉집은 거실에서 앞마당의 단풍나무와 뒤뜰의
대나무가 손에 잡힐 듯 내다보인다. 방안에서 앞뒤뜰의 정취를 함께
즐기던 옛 사랑방의 멋을 되살려 놓은 셈이다.
한국미 혹은 한국성이란 기와나 처마같은 외양을 본따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동시에 지녔던 우리것의 진정한 속내를 살려내는
일이라는 그의 철학은 사는집에서부터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드러난다.
10월초 서울종로구인사동 선화랑(734-5839)에서 가질 여섯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마무리작업이 한창인 작품들은 "작품 0"시리즈. 종래 발표해온
"태"와 "점"연작에 이어 88년부터 시작한 신작들이다.
"제목을 붙이니까 자꾸들 제목 위주로 작품을 해석하려고 해요. "태"라고
했을 때 내가 나타내려고 한 것은 생명과 생명력 자체였는데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기적인 생명체의 의미만을 떠올려요"
"작품 0"시리즈는 외견상 "태"와 "점"연작의 중간내지 접합 형태를 취하고
있다. 둥글고 옆으로 퍼진 바닥에서 하나 또는 여럿의 뾰족한 기둥이
솟아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하나의 커다란 돌기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다.
위까지 둥글고 평평하게 처리된 최근작들은 "이제쯤 머리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작가의 깨달음과 그것에서
비롯된 화평스러움을 보여준다.
"살아 움직이는 것만이 생명체라고 보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공기
한방울의 물도 생명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지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생명성및 인간과의 관계를 나타내고자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속에 감춰진 것의 생명성까지를 드러내고 싶다는
설명이다. "0"이라는 제목은 바로 이같은 의도에서 떠올랐는데 막상
정하고 보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덧붙인다.
최씨는 서울 태생으로 서울대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국전
심사위원및 운영위원, 서울대부설 조형연구소소장을 역임했다.
<글박성희기자. 사진신경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