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편안에 대한 정부와 집권여당인 민자당의 당정협의는 정부원안을
거의 그대로 확정한 가운데 싱겁게 끝났다. 경기회복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및 금융실명제의 조기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세율인하를 강력히
요구하겠다던 민자당의 방침이 적자재정은 곤란하며 세율인하는 좀더
시간이 지난뒤에 생각해보자는 정부의견에 간단히 밀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집권여당의 모양새가 꼴사납게 됐다는 것이 아니라
금융실명제의 시행으로 나타날 세금공세와 이것이 경제에 미칠 영향이다.
경기침체로 기업경영이 가뜩이나 어려운 판에 금융실명제로 과표가 모두
노출되면 세금부담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기장처리가 잘되어
있고 세무처리가 매끄러운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을수 있다. 정부는 원리원칙대로 세금을 내고서는 기업을
꾸려나갈수 없다는 불평과 함께 세무부조리가 폭넓게 퍼져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미국 영국 스웨덴 등의 예를 들며 소득세의 최고세율을
낮춤으로써 경기회복을 부추기고 부조리발생을 예방하자고 주장한바 있으며
이같은 시각은 금융실명제 실시로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즉 과표는
현실화하되 세율은 낮춰 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금공세를 피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의 불법 탈법거래가 나타날 것이며 세무부조리도 더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소득세율 1~3%포인트 인하와 법인세율 2%포인트 인하및
한계세액 공제제도의 적용대상을 연간 매출액 1억5,000만원 이하인
사업자까지 확대라는 정도의 보완책은 매우 미흡하다고 할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기부접대비 한도를 각각 매출액의 0.3%, 0.15%로
정한것은 당초안보다 늘려준 것이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법인세율의
인하도 계속 논의되어온 사항으로서 전경련의 주장대로 대만의 25%선
까지는 안된다고 해도 최고세율을 좀더 인하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개방경제시대에 우리기업의 해외진출과 연불수출을 적극 장려해야할 처지에
해외사업소득 공제제도의 폐지도 시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다.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한다는 명분으로 정부예산은 올해보다 13.8%나
늘어났으나 국민의 피땀인 세금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에는 너무 인색하여
유감이다. 특히 금융실명제의 조기정착은 소득의 성실 자진신고를
유도할수 있을때만이 가능하다. 소득의 성실 자진신고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올해초에 "앞으로 세법은 지킬수 있는 법이 되도록 바꾸겠다"고
한 이경식 부총리의 다짐이 현실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야는
국회에서 보다 진지한 토의와 검토를 벌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