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본래 칼리지, 즉 학사로서 탄생되었다. "배움의 집"인 칼리지
에서는 학생과 교사가 숙식을 함께 하며 강의 이외에 교사와 학생 혹은
선배와 후배사이에서 1대1로 학습지도며 인생상담도 주고 받았다.
이러한 칼리지의 학풍은 14세기 이후 나타난 유럽의 거의 모든
대학과, 그리고 아메리카 최초의 대학인 하버드에 의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대학이 바로 칼리지였을때 대학은 무엇보다도 인간교양의 터전을
의미하였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공동생활을 통해 서로간에 친화력과
사교적 매너, 합리적 사고와 타인에 대한 봉사의 덕성을 배웠다.

그러나 오늘날 기술산업화 사회의 도래는 대학을 단지 지식의 전수,
직업적 전문인 양산의 장으로 만들고 학사는 기숙사라는 이름아래
단순히 학생복지의 차원으로 간주되고 전적으로 숙식의 장으로 둔갑되었다.

그런데 칼리지 본래의 전통을 아직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예외가
있으니 영국의 옥스퍼드와 캐임브리지의 두 대학이다.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하여 개선한 웰링턴 장군은 "우리의 승리는 이들 스쿨의
배움의 터가 가져다 준 결실이었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도 그의 조국의 권력지향적 관료체제를 시험제도와 맞물린 독일
고등교육의 소산이라고 한탄하면서 옥스-브리지의 칼리지 학풍을 부러워한
바 있다.

공을 앞세우며 봉사하는 신사도의 도덕성(noblesse oblige),그들
엘리트계층의 성숙된 품성과 교양위에 비로소 이룩될수 있었던 근대
의회민주주의 전통. 그 모든 것의 뿌리를 옥스-브리지의 칼리지 학풍에서
찾는다면 지나치다고 할것인가.

필자가 몸을 담고 있는 대학에는 산기슭 캠퍼스 제일의 명당자리에
학생기숙사가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8백명 학생이 기숙하고 있으나
가까운 장래에 1천6백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바라건대 진정한 전인교육과
엘리트 계층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이 시점,그 단아한 건물이 단순한 침식의
장이 아닌,겨레와 사회에 이바지하는 진정한 배움의 터가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