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조성기씨(42)가 최근 펴낸 연작장편 "욕망의 오감도"(전4권.세계사
간)는 그동안 본격문학권에서 "알리기 보다는 숨겨주는" 일반정서를 고려,
금기시하던 성폭력의 문제에 정면으로 접근하고 있다.
80년대를 시대배경으로 현실고발이라는 큰 틀속에 다양한 성폭력의 양태를
담고 있다. 작가는 시대의 병적인 징후를 시로 형상화한 이상의 "오감도"를
줄곧 염두에 두고 이 소설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 시대의 가장
부끄러운 구석을 부끄러운 방식으로 펼쳐보이고 싶었다"는 것이 출간의 변.
연작형태의 4권은 "질주와 공포""아버지의 아버지들""전락하는 몸들"(1,2)
등 3부작으로 구성돼있다.
제1부 "질주와 공포"는 고시촌에서 고시생으로 위장한 두 폭력배가
부녀자를 성폭행하고 그것을 미끼로 가정파괴를 위협하며 돈을 갈취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피해자인 약사 명옥은 "또다시 가정에 위협을 줄까봐"
정당방어에 입각해 폭력범을 생매장 시켜버린다.
김진관.김보은사건을 연상시키는 제2부 "아버지의 아버지들"은 우리시대
아버지들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딸 희선의 친구 옥수를 12살때
부터 10여년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아버지의 굴절된 모습이 그려졌다.
딸 희선이 옥수를 대신해 아버지에게 복수의 칼날을 내민다.
2권으로 된 제3부 "전락하는 몸들"은 인신매매를 소재로 하고 있다.
삶의 깊이에 관심이 있고 어느 정도 지성까지 갖춘 주인공 혜미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인신매매집단에 끌려가 동두천의 양공주가 되고 탈출하기
까지의 과정이 르포처럼 다뤄졌다.
남자주인공 허상준이 일제시대 정신대로 끌려갔던 할머니를 인터뷰하는
내용과 맞물려 우리 사회의 성적 타락의 근본원인이 외세와도 연관있음을
밝히고 있다.
각기 다른 세 이야기로 분리될수도 있는 이 "욕망의 오감도"는 3부 모두
개인적인 복수의 구조로 끝을 맺는다.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지만 그 당사자
는 불행의 나락으로 빠지고 마는 비극적 구조이다. 누군가 해결 줄 수도
없고 사회는 오히려 피해당사자에게 원인을 돌리거나 왜곡된 눈으로 바라보
는 현실,그것이 성폭력이 난무하면서도 구조적으로 뿌리 뽑히지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는 작가의 체념어린 현실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성의 상품화가 이렇게 조장되지는 않았습니다.
80년대 5.6공시절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지요. 그만큼 희생양이 되는
젊은 여성들이 늘어났고 인신매매도 흉폭화 기업화됐지요"
그 결과 인신매매와 성폭력에 대한 공포는 80년대 우리사회 여성들의
"집단히스테리"가 됐다는 것이 조씨의 설명이다.
"욕망의 오감도"에는 성에 관한 남성들의 호기심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남성들의 호기심이 잘못 경도될 경우 여성에게는 인생을 좌우할 사건으로
변할수 있다는 것이 조씨의 경고이다. 다소 청소년들이 읽기에 자극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흠. 조씨는 그러나 "적당히 얼버무려서는 곤란할 만큼
우리 사회의 성풍속은 병들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권영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