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있으면 제48차 유엔총회가 뉴욕에서 열린다. 2년전 우리가 161번째
정회원국으로 가입하는 감격을 겪은바 있는 유엔의 식구는 이제 도합
183개국으로 불어나 있다.

이렇듯 많은 국가들간에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모두가
한결같이 민주주의와 민주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점일 것이다. 심지어
세계에서 지금 유일하면서 가장 폐쇄적인 1인1당지배사회로 지칭되는
북한까지도 "민주주의"표찬을 국호에 버젓이 달고 있지않은가.

그러나 북한이 민주국가가 아닌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경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민주주의에서도
선진과 후진,개도국에 비유될 민주화도상국가의 구분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구분은 다양하고 천차만별일 것이다.

여러가지 잣대를 구분의 기준으로 삼을수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운용에서부터 사회의 모든 기관,심지어는 한 가정의 중요한
결정들이 얼마나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느냐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추구해야할 목표나 제도이기보다 과정이다. 절차의 합법 합당성과 더불어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의 존재여부와 실질내용이 중요하다.

민주적인 결정과정의 핵심은 토론이다. 모든 기관 모든 레벨 모든
집단에서 활발하고 진지한 토론문화가 깊게 뿌리내려 있어야한다. 정치와
선거,정부의 크고 작은 정책개발 운용에서 언제나 관심있는 국민과
이해집단의 활발한 토론이 있지않으면 안된다.

우리사회의 불행은 토론문화가 아예 없다고 말해야 할만큼 빈곤한
현실에 있다. 한.약분쟁 금융실명제 공직자재산등록공개소동등 지금
우리사회를 온통 뒤흔들고 있는 일들이 모두 그런 현실에 연유한다.
이런 중대한 문제들이 아무런 토론없이 슬그머니 혹은 한두사람의
결심으로 단행되고 그뒤처리도 그런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가령
공직자재산소동의 경우 실사기준과 사후처리등에 관해 말할수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뿐이다.

모두가 꿀먹은 벙어리마냥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다. 총론에 찬성해도
각론에서는 얼마든지 이견이 있을수 있는데 바람(세)과 흐름(류)에
익숙하고 길들여진 탓인지 그저 구경만 하고있다.

토론없는 정치,말이 없는 사회는 민주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살아
숨쉬는 사회가 아니다. 다음엔 또 무슨 일이 얼어날지,내일은 또 누구의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사회에서는 국민이 편안하길 바랄수 없다.

정기국회가 막 열렸지만 별 기대를 걸 처지가 못된다. 가장 힘있고
민주적인 토론의 마당이어야할 국회에 대한 민심의 이반이야 말로 큰
불행이다. 이번에도 판에 박은 정책질의, 피의자신문조의 국정감사,
고무도장식 의안처리로 존재를 과시하고 말 것이다. 정치개혁을
입에 올린게 언젠데 어느날 난데없이 하늘에서 떨어진양 영국식선거제가
어떻고하며 법석을 떠는 모습이 바로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는 말을 듣는
우리 국회,국회의원과 정치의 현주소이다.

민주적인 토론문화가 하루아침에 생길수는 없다.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교육돼야 하고 가정과 사회가 그런 바탕위에서
굴러가야 한다.

미운 일곱살은 의문이 많다. "왜"가 많다. 그게 바로 토론의 시작이다.
그러나 우리가정 우리사회 우리교육은 초장부터 그걸 말살해 버린다.
공부 잘하고 말 잘듣는 일만이 요구되고 비판및 이견과 토론은 발붙일
틈이 없다. 다양성 대신 획일성,창의성대신 복제가 교육에서부터
경제 사회활동등 모든 분야을 지배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민주정치는
말할것없고 더이상의 경제발전과 선진화를 기대할 수가 없다.

문민이 곧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제목소리를 내고
활발한 토론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는 민주적인
프로세스가 구석구석에서 생동할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실현된다.

이 점에서 우리는 아직 멀었다. 멀어도 한참 멀었다. 정치인을 포함해서
적어도 자기 주장을 조금이라도 펴는 면에서는 오히려 더욱 후퇴하는
느낌이다. 우리에게 지금 진정으로 요구되는 개혁은 바로 토론문화를
발전시킬 교육개혁과 정치.사회개혁이다. 그런 개혁의 결단을 내리고
실행할 사람도 불행하지만 이순간은 오직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