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쉴리만이라는 일곱살 난 독일 소년은 목사인 아버지로부터
크리스마스선물로 그림책 한권을 받았다. 트로이가 고대 그리스군에
점령당한 뒤 불길에 싸여있는 그림이 실려 있었다. 그 소년은 그 그림을
보는 순간 트로이의 유적을 찾아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가 단순한 시적
공상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임을 밝혀 내겠다는 집념에 사로 잡혔다.

"일리아드"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여왕 헬레네를
유괴함으로써 벌어진 트로이와 그리스의 10년전쟁을 묘사한 서사시이다.
알렉산더대왕을 비롯 "일리아드"를 즐겨 읽은 그 누구도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었던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쉴리만은 트로이성이 어디엔가
묻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집안이 가난한 쉴리만은 14세때 학교공부를 그만 둔 뒤 트로이유적을
찾는데 쓰일 비용을 마련하고자 점원 행상 심부름꾼 노릇으로 번 돈을
밑천으로 삼아 도매점 무역회사를 경영해 백만장자가 된다.

쉴리만이 46세가 되던 1868년 트로이를 찾는 일에 나섰다. 터키 서부의
내륙마을인 부나르번시를 비롯 라다넬스해협의 바닷가를 누비고 다닌
2년만인 1870년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성의 지형과 일치되는 뉴
일리엄(지금의 히사클리크)언덕을 찾아내 그해 4월 첫삽질을 했다.

해발 54m 의 그 언덕은 마치 거대한 양파의 껍질처럼 층층히 서로 다른
유적지를 드러냈다. 쇠붙이를 쓸줄 몰랐던 원시시대의 두 도시를 합하여
무려 9개나 되는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쉴리만은 맨밑에서 두번째와 세번째층에서 불탄 흔적과 7m 높이의 튼튼한
성벽, 거대한 성문터, 이마에서 어깨까지 늘어뜨려지는 1만6,000개의
순금조각으로 이루어진 금관등 8,700여점의 보물을 찾아냈다. 그때
쉴리만은 이곳을 트로이성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가 죽기 얼마전에
트로이보다 1,000여년이 앞선 것으로 밝혀졌다. 뒷날 트로이성이 있었던
지층은 맨밑에서 제6층 또는 제7층A라고 수정되어 쉴리만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히사클리크언덕지하에서 발굴된 보물들을 비롯한 1만2,000여점의
쉴리만컬렉션이 베를린의 선사시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오다가 2차대전중
해방불명되어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것들이 모스크바에 보관되어 있다는
러시아당국의 최근 발표에 트로이가 다시 소생된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독일과 터키간의 소유권 다툼도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