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명중영화제작소 기획실에 근무하는 권미정씨(27)는 최근 심야에 귀가
하는 일이 잦아졌다.

추석 개봉작으로 준비한 영화"패왕별희"가 연말개봉으로 늦춰지면서 대신
"신시네마천국" "그린 파파의 향기"등 다른 외화의 홍보업무가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해당 영화가 소개된 외지를 체크하고 시사회 일정을 잡고 각종 이벤트도
기획해야하는 까닭에 연일 아이디어회의가 끊이질 않는다.

지난해 7월 입사한 권씨는 일이 더 많아지더라도 우리영화를 기획하고싶은
소망을 갖고 있다.

연출 기획 홍보분야에 젊은이들의 진출이 늘면서 영화계가 젊어지고 있다.

90년대에 들면서 늘어나기 시작한 이 젊은 영화인들은 영화계에 과학적
비즈니스개념을 도입, 한국영화계의 체질개선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철저한 관객성향조사에 바탕을 두고 기획된 영화 "결혼이야기"의
성공이후 기획.홍보분야를 평생직업으로 택해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는 투기산업으로 인식됐고 평생직업으로는
부적합한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다.

매월 모임을 갖는 기획실모임은 회원이 90여명에 이른다. "결혼이야기"
이후 "미스터 맘마" "아래층 여자와 위층남자" "101번째 프로포즈"
"그대안의 블루" "그여자 그남자"등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영화들이 모두
젊은 기획자들이 참여한 영화들이다.

젊은 기획자들이 기획한 영화가 성공을 거두자 기존 영화사들의 기획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80년대와 달리 기획실 직원이 왜 필요한가 의문을 갖는 회사는 이제
없어졌다.

젊은 기획자들은 시나리오 선정에서부터 주연배우 캐스팅, 촬영진행과
개봉 후 홍보까지 모든 영역에서 비즈니스 개념에 입각한 과학적 시장분석
을 통해 영화제작의 개념을 바꾸어가고 있다.

신세대들의 급변하는 기호를 분석, 항상 새로운 영화를 기획제작하려는
열의도 보이고 있다.

90년대 영화기획 전문시대를 연 사람은 신씨네를 이끌고 있는 신철씨(35).
88년 9월 신씨네를 창립한 그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베를린
리포트"등의 영화기획을 하다 "결혼이야기"에서 시나리오료를 포함해 4천
만원이 넘는 기획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종래 받았던 기획료의 서너배를 넘는 수준이다.
이후 "미스터 맘마"가 26만여명, "101번째 프로포즈"가 조기종영에도
불구하고 10만6천명을 동원하는 등 계속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신씨네는 "미스터 맘마"이후의 작품에서는 대우비디오측과 컨소시엄제작을
하고 있다.

신씨네와 유사한 작업을 하는 기획사는 기획시대(대표 유인택)영화기획
정보센터(대표 임상수) 심재명팀 씨네포럼(대표 선양욱) 씨네월드(대표
이준익) 애드시네마(대표 유희숙)등 10여개에 이른다. 이중 후발주자인
애드시네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화사 등록도 마쳤다.

기획자가 영화를 한편 기획하는데 받는 돈은 A급의 경우 한국영화
2천~3천만원, 외화홍보 1천만원선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젊은 영화기획자들은 최근 영화를 하나의 상품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영화계 내외의 우려를 사고 있다. 상업주의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다.

올해들어 영화기획계 내부에서도 젊은 영화인들이 "결혼이야기"의 아류
만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세대들의 감각에 맞는 작품만을 집중적으로 제작, 흥행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한국영화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또 외국의 예에서 보듯 기획의 개념이 확대될 경우 감독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나리오 작업에서부터 캐스팅까지 영화작업
전반을 기획이 이끌어갈 경우 영화의 예술성보다는 당시 유행에 맞는
감각을 자꾸만 좇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부 젊은 감독이 독립영화 프로덕션을 만드는 것은 기획개념의 확대경향
에 대응,자구책을 모색하려는 시도로서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일부 외화 홍보기획의 경우는 벌써부터 과장.허위홍보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젊은 기획자들의 등장은 한국영화계전반의 발전을 위해서는 고무적
일 수 밖에 없다.

직배반대의 열기는 식어버렸고 직배영화는 이미 우리 영화계에 뿌리를
내렸다.

"쥬라기 공원" "알라딘"등의 성공은 한국영화사의 이정표를 세운 "서편제"
흥행의 2배수준이다.

스크린쿼터제는 존폐의 위기에 놓여있다.

결국 우리 영화계는 하나의 견고한 구조를 갖춘 산업으로 정착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영화계는 이제 더 이상 예술하는 사람들만이 모인 집단이 아니다.
주먹구구식 경영으로는 배겨나지 못한다. 영화산업이 속속 개방돼 외화와
외국영화사에 종속될 우려가 적지 않지만 대기업도 진출을 노릴만큼 투자
가치 높은 산업인 것이다.

영화계의 사업들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이제 젊은이들이 기획분야를
중심으로 진출하고 있다.

젊은 영화기획자들의 영화계진출은 문화산업의 기본골격을 구축해가는
우리 영화계가 맞이하고 있는 90년대의 새로운 현상이다.

<권영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