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들의 숙원인 재일거류민단(민단)의 `국민등록.신원증명제'' 폐
지를 둘러싸고 정치권과 정부가 갈등을 빚는 등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재일교포가 대한민국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단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재외국민등록.신원증명제를 관장하고 있는 외무부
는 최근 이 제도가 재일교포들에게 경제적 부담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위법성의 소지를 안고 있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이를 폐지한다는
방침을 굳히고 개혁안을 마련했으나 정치권 등의 반대로 막상 실행을 미
루고 있다.
외무부 고위당국자는 20일 "재일교포 김예호(66)씨가 지난 7월초 재일
동포 국민등록.신원증명제의 위헌.위법을 이유로 서울고등법원에 행정
소송을 낸 것을 계기로 정부는 민단 경유제도 폐지안을 마련했다"며 새
정부의 개혁 차원에서 이 제도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무부의 다른 실무 당국자는 "폐지안은 실행단계에서 여.야
의원을 포함한 정치권의 제동으로 난관에 봉착해 있다"면서 "정치권의
반대의사는 이 제도의 폐지로 영향력과 수입이 줄게 될 민단쪽의 압력과
청탁을 여과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자.민주당 일부의원들은 최근 집단적 또는 개별적으로 한승주 외무
장관 등에게 이 제도를 없애지 말라는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
며, 주일 대사관과 외무부 본부의 실무자들은 이에 대해 "정치권의 무분
별한 영향력 행사"라고 크게 반발하고 있다.
민단은 정부의 국민등록.신원증명제의 폐지방침이 알려지면서 외무부에
는 경과조처로 시간여유를 달라고 요구하는 한편, 민단과 연고가 있는 의
원들을 동원해 폐지안의 실행을 막으려 하고 있다.
민단의 국민등록.신원증명제도란 지난 49년 제정된 재외국민등록법을 근
거로 대한민국 여권을 받으려는 재일교포는 우선 민단에서 국민등록 및
신원증명확인서를 받아 공관에 여권을 신청하도록 한 편법적 조처다.
민단은 신원증명확인서를 떼주면서 일정액(1만2천엔)을 수수료로 받고
밀린 민단회비도 한꺼번에 징수함으로써 법률의 위임없이 사실상 국가기
관으로 행세해 재일교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외무부와 주일대사관은 이 제도의 탈법성과 인권침해소지를 인
정하고 폐지를 여러번 시도했으나 민단의 강력한 반대와 정치권의 제동으
로 번번이 실패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