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초대석] 안희완 전 주월영사..5년간 베트남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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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대부"-.
안희완 전 주월영사가 4일 12년여동안 몸담고있던 전국투자금융협회에서
총무부장직을 끝으로 퇴직,베트남 경제에 관한 개인연구소를 차린다.
우리나라와 공산 베트남간의 관계가 공식화되기 훨씬 이전인 89년부터
개인적으로 베트남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온 그는 지난5년간 정기간행물인
"베트남 경제동향"등 71권의 자료를 펴냈다.
이들 자료는 정부 관계부처와 기업 연구소등에 배포돼 업계는 물론 국책
연구기관이 따르지 못하는 내용의 신속성과 정확한 분석으로 성가를
쌓아왔다.
-곧 개인연구소를 차리신다는데요.
"의정부에 조그만 빌딩을 마련,준비가 되는대로 연구소를 출범시킬 계획
입니다. 마침 국내 동남아학회의 교수들을 비롯 많은 분들이 인적 지원을
약속해 큰 힘이 되고있지요"
-재정부담이 적지않을 텐데요.
"저는 지금까지 베트남연구와 관련해 누구에게도 재정지원을 받은적이
없었고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자비를 들여 연구활동을 하는 그자체가 저의
보람이었고 명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부산하기관을 위시해 어느기관에서도 우리의 중요한
경제파트너로 떠오른 베트남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소홀히 하고있는 현실
이지요. 정부기관에서 베트남경제를 적극적으로 연구한다면 저는 기꺼이
무료봉사할 생각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못하니 개인연구소라도 차리지 않을
수 없지요"
안전영사는 지난75년4월 자유월남의 패전당시 우리나라의 주월영사로
공관태극기를 마지막으로 내린 장본인. 미처 철수를 못한채 공산베트남
정부에 억류돼 80년4월까지 꼬박 5년동안 애매한 옥살이를 해야했다.
이처럼 개인적인 한을 도리어 우리나라와 베트남간의 관계재구축에
기여하는 것으로 승화시켜온 그이기에 베트남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기반이
조성돼있지 않은데 대한 아쉬움은 또다른 "한"이 되고 있는듯 하다.
<이학영기자>
안희완 전 주월영사가 4일 12년여동안 몸담고있던 전국투자금융협회에서
총무부장직을 끝으로 퇴직,베트남 경제에 관한 개인연구소를 차린다.
우리나라와 공산 베트남간의 관계가 공식화되기 훨씬 이전인 89년부터
개인적으로 베트남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온 그는 지난5년간 정기간행물인
"베트남 경제동향"등 71권의 자료를 펴냈다.
이들 자료는 정부 관계부처와 기업 연구소등에 배포돼 업계는 물론 국책
연구기관이 따르지 못하는 내용의 신속성과 정확한 분석으로 성가를
쌓아왔다.
-곧 개인연구소를 차리신다는데요.
"의정부에 조그만 빌딩을 마련,준비가 되는대로 연구소를 출범시킬 계획
입니다. 마침 국내 동남아학회의 교수들을 비롯 많은 분들이 인적 지원을
약속해 큰 힘이 되고있지요"
-재정부담이 적지않을 텐데요.
"저는 지금까지 베트남연구와 관련해 누구에게도 재정지원을 받은적이
없었고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자비를 들여 연구활동을 하는 그자체가 저의
보람이었고 명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부산하기관을 위시해 어느기관에서도 우리의 중요한
경제파트너로 떠오른 베트남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소홀히 하고있는 현실
이지요. 정부기관에서 베트남경제를 적극적으로 연구한다면 저는 기꺼이
무료봉사할 생각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못하니 개인연구소라도 차리지 않을
수 없지요"
안전영사는 지난75년4월 자유월남의 패전당시 우리나라의 주월영사로
공관태극기를 마지막으로 내린 장본인. 미처 철수를 못한채 공산베트남
정부에 억류돼 80년4월까지 꼬박 5년동안 애매한 옥살이를 해야했다.
이처럼 개인적인 한을 도리어 우리나라와 베트남간의 관계재구축에
기여하는 것으로 승화시켜온 그이기에 베트남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기반이
조성돼있지 않은데 대한 아쉬움은 또다른 "한"이 되고 있는듯 하다.
<이학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