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밭벌에서 .. 김수배 과학기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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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이래 이땅에서 벌어진 가장 큰 잔치라고 하는 대전세계박람회를
조직위의 초청으로 둘러봤다.
명징한 가을하늘아래 저마다의 특징을 뽐내고 있는 전시관들이 꽉 들어찬
대회장은 첨단과학이 주는 중압감과는 달리 만국기 휘날리는 시골
국민학교의 가을운동회장같은 다소 들뜬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2년여만에 이런 시설을 해놓았다고 하면 외국사람들은 곧이듣지 않지요"
오명 조직위원장의 자랑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시설이 완벽에 가깝게 돌아가고 있었다.
별로 강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대전엑스포는 국제엑스포기구(BIE)의 정규
스케줄에 들어있던 종합박람회가 아니다. 우리정부의 긴급요청에 의해
갑자기 끼어들어간 특별박람회인 것이다.
그래서 불과 3년전인 90년에야 파리 총회에서 공인받아 대회조직위의
구성과 준비기간이 짧았다.
그런데도 이만큼 차질없이 대회를 치러내고 있는 것은 모두다 우리민족의
억척스러움 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무리 상다리가 휘도록 잔칫상을 잘 차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미덕이라 하더라도 이번에 차린 잔칫상은 상다리힘에 비해 너무
무겁고 실속이 없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엑스포규약 제1조는 엑스포의 목적을 "일반대중의 교육"에 두고있다.
"오락"이 아니라 "교육"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엑스포는 조직위가
자랑스럽게 발표하는 관람객수에만 너무 집착해서인지 지나치게 오락성을
강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업이미지가 전시관 하나로 결판이라도 나는양 적게는 200억원에서
많게는 500억원씩을 쏟아부어 경쟁적으로 꾸며놓은 대기업 그룹의 전시관
들은 대부분 첨단영상의 짜릿함만을 강조한 공상만화영화의 세트같은
느낌을 준다.
교육적인 전시물보다 오락성위주의 영상물들이 넘쳐나 "엑스포장은 거대한
전자오락실"이라는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거금을 주고 외국에서 빌려온 첨단영사기로 미국에서조차 공개되지 않은
행성필름을 보여주는 곳도 있다. 이 필름은 자금에 쪼들리는 NASA(미항공
우주국)가 수십억원을 받고 세상에 처음 공개하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기업측은 말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꿈"이란
말은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지만 현실에 대한 반성없이 미래의 꿈만
부풀린다는 것은 자칫 허망을 낳기 쉽다. 대회장 어디에도 우리의
과학기술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주는 장은 없다. 우리민족 특유의
허장성세가 또한번 그대로 드러난 것같은 느낌이 든다.
송두리째 시력을 앗아갈것만 같은 멀티미디어영화관을 나오며 생각있는
관람객이라면 "볼거리는 있는데 감동은 없다"는 생각에 젖게될 것이다.
준비한 사람들의 수고는 충분히 느낄수 있지만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메시지를 받을수 없다면 그것은 놀이기구로 가득찬
디즈니랜드와 다를바 없다. 보는 엑스포가 아닌,느끼고 배우는 엑스포에
우리기업들이 좀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개의 이질적인 문화가 서로 충돌해 보다 나은 제3의 문화를
탄생시킨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말대로라면 우리의 엑스포는 자연과의 철저한
조화에 바탕을 둔 한국의 전통적 과학관과 서양의 첨단과학을 결합시킨
새로운 과학기술문화를 보여줬어야 옳았다. 기업들은 독자적인 첨단기술을
갖지못한 형편에서 남의 기술로 세계를 깜짝놀라게 하려는 기술적 경이에만
너무 매달리지 않았나 자문해볼 일이다.
과연 지금의 교육제도,지금의 행정체제아래서 엑스포가 과학발전의 기폭제
가 될수 있을 것인지 냉정히 따져보는 일은 정부몫으로 남겨진 숙제다.
가을햇살이 설핏한 오후 대회장을 나오자니 시골에서 온듯한 한무리의
관람객들이 주차장의 전세버스그늘에 모여앉아 논두렁에서처럼 "새참"을
들고 있다.
그들의 검은 얼굴은 조금전 행성으로의 여행을 위해 우주선을 탔을때
안전벨트를 맬줄몰라 쩔쩔매던 당혹스런 표정과는 달리 첨단과학과는
동떨어진,일종의 안도감을 담고있는듯 했다.
저들을 포함한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엑스포는 어쩌면 서태지의 랩송
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주문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석양이 곱게 물드는 한밭벌을 떠나면서 "리듬만 있을뿐 멜로디가 없는"
랩송을 하루종일 들은 것같은 피로를 느꼈다.
조직위의 초청으로 둘러봤다.
명징한 가을하늘아래 저마다의 특징을 뽐내고 있는 전시관들이 꽉 들어찬
대회장은 첨단과학이 주는 중압감과는 달리 만국기 휘날리는 시골
국민학교의 가을운동회장같은 다소 들뜬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2년여만에 이런 시설을 해놓았다고 하면 외국사람들은 곧이듣지 않지요"
오명 조직위원장의 자랑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시설이 완벽에 가깝게 돌아가고 있었다.
별로 강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대전엑스포는 국제엑스포기구(BIE)의 정규
스케줄에 들어있던 종합박람회가 아니다. 우리정부의 긴급요청에 의해
갑자기 끼어들어간 특별박람회인 것이다.
그래서 불과 3년전인 90년에야 파리 총회에서 공인받아 대회조직위의
구성과 준비기간이 짧았다.
그런데도 이만큼 차질없이 대회를 치러내고 있는 것은 모두다 우리민족의
억척스러움 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무리 상다리가 휘도록 잔칫상을 잘 차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미덕이라 하더라도 이번에 차린 잔칫상은 상다리힘에 비해 너무
무겁고 실속이 없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엑스포규약 제1조는 엑스포의 목적을 "일반대중의 교육"에 두고있다.
"오락"이 아니라 "교육"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엑스포는 조직위가
자랑스럽게 발표하는 관람객수에만 너무 집착해서인지 지나치게 오락성을
강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업이미지가 전시관 하나로 결판이라도 나는양 적게는 200억원에서
많게는 500억원씩을 쏟아부어 경쟁적으로 꾸며놓은 대기업 그룹의 전시관
들은 대부분 첨단영상의 짜릿함만을 강조한 공상만화영화의 세트같은
느낌을 준다.
교육적인 전시물보다 오락성위주의 영상물들이 넘쳐나 "엑스포장은 거대한
전자오락실"이라는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거금을 주고 외국에서 빌려온 첨단영사기로 미국에서조차 공개되지 않은
행성필름을 보여주는 곳도 있다. 이 필름은 자금에 쪼들리는 NASA(미항공
우주국)가 수십억원을 받고 세상에 처음 공개하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기업측은 말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꿈"이란
말은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지만 현실에 대한 반성없이 미래의 꿈만
부풀린다는 것은 자칫 허망을 낳기 쉽다. 대회장 어디에도 우리의
과학기술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주는 장은 없다. 우리민족 특유의
허장성세가 또한번 그대로 드러난 것같은 느낌이 든다.
송두리째 시력을 앗아갈것만 같은 멀티미디어영화관을 나오며 생각있는
관람객이라면 "볼거리는 있는데 감동은 없다"는 생각에 젖게될 것이다.
준비한 사람들의 수고는 충분히 느낄수 있지만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메시지를 받을수 없다면 그것은 놀이기구로 가득찬
디즈니랜드와 다를바 없다. 보는 엑스포가 아닌,느끼고 배우는 엑스포에
우리기업들이 좀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개의 이질적인 문화가 서로 충돌해 보다 나은 제3의 문화를
탄생시킨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말대로라면 우리의 엑스포는 자연과의 철저한
조화에 바탕을 둔 한국의 전통적 과학관과 서양의 첨단과학을 결합시킨
새로운 과학기술문화를 보여줬어야 옳았다. 기업들은 독자적인 첨단기술을
갖지못한 형편에서 남의 기술로 세계를 깜짝놀라게 하려는 기술적 경이에만
너무 매달리지 않았나 자문해볼 일이다.
과연 지금의 교육제도,지금의 행정체제아래서 엑스포가 과학발전의 기폭제
가 될수 있을 것인지 냉정히 따져보는 일은 정부몫으로 남겨진 숙제다.
가을햇살이 설핏한 오후 대회장을 나오자니 시골에서 온듯한 한무리의
관람객들이 주차장의 전세버스그늘에 모여앉아 논두렁에서처럼 "새참"을
들고 있다.
그들의 검은 얼굴은 조금전 행성으로의 여행을 위해 우주선을 탔을때
안전벨트를 맬줄몰라 쩔쩔매던 당혹스런 표정과는 달리 첨단과학과는
동떨어진,일종의 안도감을 담고있는듯 했다.
저들을 포함한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엑스포는 어쩌면 서태지의 랩송
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주문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석양이 곱게 물드는 한밭벌을 떠나면서 "리듬만 있을뿐 멜로디가 없는"
랩송을 하루종일 들은 것같은 피로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