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청산을 통한 사법부 개혁이 최대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정치판결''과 관련한 판사 명단이 공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명단은 4일 국회 법사위 소속 강수림 강철선 의원(민주) 등이 국정
감사 자료를 요청한 데 대한 대법원의 답변을 통해 밝혀졌다.
지난 7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대표적인 정치판결로 지목한
유성환 의원 국시논쟁사건, 강기훈씨 `유서대필''공방사건, 14대 총선 때
안기부 흑색선전사건을 비롯해 이창석씨 보석허가사건,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재정신청 등 `정치사건''을 담당한 이들 법관의 명단이 공개됨으로써
앞으로 사법부 개혁과 관련해 커다란 파문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86년 유성환 의원 국시논쟁사건 1심에서 징역1년 자격정지 1년의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박영무(현 서울고법 부장판사) 허근녕(서울민사지
법 판사) 신귀섭(서울 북부지원 판사)씨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재판
부는 이 사건의 쟁점이었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는
유 의원의 발언 내용에 대해 "용공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판시했으
나 "5.3인천사태는 민중의 생존권투쟁"이라고 발언한 것을 문제삼아
실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3당 합당 뒤인 91년 11월 열린 항소심에서 공소기각판결을
내려 사법부가 잘못을 스스로 인정했고 대법원도 지난해 9월 2심판결을
확정했다.
분신자살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로 구
속기소된 강기훈씨에 대해 1심에서 뚜렷한 증거없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의 감정결과만으로 징역3년 자격정지 1년6월을 선고한 재판부는 노원욱(
퇴직) 정일성(대전지법 판사) 이영대(서울민사지법 판사)씨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2심(임대화 서울고법 부장판사, 윤석종.부구욱 서울고법 판
사) 및 원심을 확정한 대법원(김상원.박우동.윤영철.박만호 대법관)을
거치면서 엄밀한 사실관계보다도 사법부가 `주관적 유죄심증''에 치우쳤다
는 비판을 받았다.
또 14대 총선을 사흘 앞두고 서울 강남을선거구에 흑색선전물을 뿌린
안기부요원 4명 모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해 여론의 지탄을 받았던 재판
부는 이영범(서울고법 부장판사) 김재복(대구지법 판사) 손지호(서울민사
지법 판사)씨인 것으로 드러났다.
86년 10월 부천 성고문사건의 피해자인 권인숙씨가 낸 문귀동 경장 기
소유예처분에 대한 재정신청과 관련해 이철환(인천지법 원장) 손기식(서
울민사지법 부장판사)씨 등 재판부는 고문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문 경장
이 뒤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대체로 시인하고 용서를 빌고 있으며 비등
한 여론과 피의사실로 인해 형벌 못지 않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짐작이 가 기소유예처분한 것은 그 상당성이 인정된다"면서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문씨는 그후 88년 7월에 징역5년을 선고받았다.
90년 10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위반(업무상 횡령) 등으로 구속됐던
이창석씨에게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으며 주거가 분명하다"는
이유로 보석을 허가해 비난을 받았던 대법원 재판부는 김덕주(주심.전
대법원장) 윤관(대법원장) 안우만 배만운(이상 대법관)씨였던 것으로 밝
혀졌다.
이와 함께 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위원장 전두환)에 참여해
5공 출범에 기여한 현직판사들은 김헌무 수원지방법원장 , 이건웅 서울고
법 부장판사, 양삼승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 등 3명으로 드러났고 이.양
부장판사는 국보위 상임위 활동을 마치자마자 80년 10월 국가보위입법회
의에도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대한변협의 한 관계자는 "사법부가 내세우는 개혁이 성공
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정치판사''로 지목되는 이들 법관에 대한 인적 청
산이 없고서는 공염불에 불과하다"며 "당시 시국사건을 한차례 담당했
다고 해서 모두 정치판사라고 할 수는 없으나 스스로 도의적 책임을 느낄
경우는 용퇴해야 하며 과감한 인사개혁을 통해 조직의 인적 청산이 이루
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