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근 특파원 현장취재 >

"독일의 통일은 아주 상이한 발전단계와 경제구조 그리고 아주 판이한
제도적 틀을 갖춘 두 국가를 통합해야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는 점에 문제
의 복잡성이 있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국가소유의 사회주의적인 계획경제를
개인소유의 시장경제로 어떻게 전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론도 없고
역사적인 사례도 없다. 현재의 경제학은 이 문제에 대해 특정처방을 갖고
있지 못하고 따라서 어떤 정책적인 행동지침도 가르쳐 주지 못하고 있다"

독일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는 5인의 경제학자(오현)중 한사람인 호르스트
지버트(Horst Gibert)박사가 통독의 실험성을 평가한 말이다. 그래서 독일
통일은 사회주의를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줄 것이라는
기대다.

3년이 지난 지금 독일의 통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것은 정치가들을 제외하고는 통독을 즐거워 하는 독일인들이
별로 없다는데서도 알 수 있다.

우선 경제적으로 동서 양쪽이 전혀 균형을 찾지 못하고 서로의 거리감만
더 뼈저리게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파생된 옛동서독주민들간
의 심리적인 갈등은 통독의 완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민족 두국가체제를 한국가 두사회로 바꿔 놓은 독일통일은 이러한 내적
분단 시대를 극복하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함으로써만이 비로소 역사적
실험은 종지부를 찍게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더 들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현재 추산으로는 2000년까지 적어도 2조마르크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추가적인 비용부담을 막기 위해서는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을 빨리 활성화
시킬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통일을 서독의 낡은 제도를 정비하는 체제전환의 계기로 삼자는 주장도
있다. 지버트 박사에 따르면 통일이후를 전제로 하지 않고 유지돼온
서독의 재정.금융.임금 등 3대 경제정책은 통일시대에 맞게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정책은 재정적자와 조세부담을 낮추는데 촛점을 맞추고 임금정책은
동서독 모두에서 임금우선으로부터 고용우선으로 방향을 전환함으로써
이자율인하를 위한 금융정책의 운용폭이 확대시켜야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동독지역에서 행정조직의 재편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것도 지적되고
있다.

지버트 박사는 북한주민이 숫적으로 통일한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동독주민이 통일독일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크고 북한지역면적이
남한지역보다 넓다는 점에서 한반도상황이 독일에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전제,"그런 점에서 통일한국은 더 첨예한 통합의 문제를 안게 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옛동서독의 전문가들이 통독 3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구동성으로
건내주는 한반도통일에 대한 충고는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과도기를 거친
뒤 흡수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 과도기동안에는 남북한
사람들의 왕래도 어느정도 통제하고 화폐도 적절한 환율을 매개로 분리사용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통일전 내독부차관을 지냈던 부르크하르트 도비에 박사는 "과도기를 통해
양측의 상이한 경제체제나 사법.행정제도등을 통합해 가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조언한다.

독일경제연구소(DIW)의 구스타프 아돌프 호른 박사는 보다 구체적으로
"경제수준을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준비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라면서 때문에 한반도통일은 북한경제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른박사는 "독일의 통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진행됨으로써 경제적 배려보다는 정치적 타협이 우선됐기
때문에 독일 경제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센주정부의 오르트박사는 "남한이 북한에 비해 경제력이 월등하지만
미리 북한에 투자를 해두어야만 통일후의 경제적 부담과 북한주민들로부터
의 불만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흡수통합을 당한 당사자의 입장을 대변
했다.

디터 예니셴 드레스덴상공회의소소장도 "남북한 당사자들은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특히 정치가들이 아닌 경제전문가들에 의해 통일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옛동독의 간판기업의 하나였던 카벨사의 디트리히 플뤼게 기술담당이사는
통일이 정치.경제적인 차원만은 아니라면서 "사회적인 불만은 폭탄과도
같다"고 전제,"흡수당하는 측의 사회적인 불만을 최소화하는 배려가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통독이후에 대해 건강한 낙관론을 펴는 지버트 박사는 "이 대지는 아직도
위대한 행위를 위한 공간이다. 여기에서 놀라운 일들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인용하면서 통독이 가져올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 봤다. 이제 옛동독지역에 새로운 자본시설의 시대가 시작되면
옛동독지역은 서독보다 더 현대적이 될 것이고 서독이상의 생산성을 실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