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쿠라가 입궐을 하자, 휴회에 들어갔던 회의가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메이지천황까지 참석을 했다. 소어소에서 어전회의가
정식으로 개최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번 거사의 주모자인 이와쿠라를 중심으로 일본의 역사가
일대전환을 하는 회의였다. 그가 집에서 들고온 상자속에 모든 문안이
들어있으니,말하자면 국가의 운명이 그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셈이었다.

친막부파가 배제된 회의니,다시 말하면 반대파가 없으니 회의는 미리
정해진대로 잘 미끄러지듯 진행되어 나갔다.

왕정복고의 대호령문을 메이지천황이 읽었다. 그는 아직 열다섯 살밖에
안되어서 곧잘 "히메기미", 즉 앳된 아가씨 같은 임금으로 불렸다. 그런
미소년형의 천황이었지만, 제법 낭랑한 목소리로 대호령문을 읽어나갔다.

"도쿠가와요시노부는 지금까지 위임되어 있던 막부의 대정을 봉환하고,
쇼군직에서 물러나기로 하였는 바 금일 짐은 그 청원을 받아들이노라.

돌이켜보건데 가에이 6년 이래 미증유의 국난을 당하여 선황께서 하루도
마음편할 날이 없었음은 신민이 다 잘 알고있는 일이로다. 따라서 이번에
짐은 왕정을 복고하고, 국위를 만회하는 기초를 세우기 위하여 섭정과 관백
그리고 정이대장군,국사계,의주,전주,수호직,소사대를 폐지하고,당장은
우선 총재,의정,참여의 세 직을 두어 국사를 영위해 나가려고 하노라.

그러므로 진무천황의 창업정신을 본받아 공경,무가,당상,지하의 차별없이
공의를 다하여 구악을 씻어내고,만백성과 고락을 같이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진충보국의 정성을 가지고 봉공해 주기 바라노라"
장내의 분위기는 숙연하였다.

대호령문의 낭독에 이어서 신정부의 구성에 관한 발표가 있었다. 그
문안은 회의의 의장인 나카야마다다야스가 읽었다.

총재는 아리스가와노미야다루히도친왕이었다. 의정은 나카야마다다야스를
비롯해서 모두 열 사람이었는데,그 가운데 다섯 사람은 이번에 거사를
주도한 다섯번의 번주였다. 그리고 참여는 도합 이십명이었다. 그속에
이와쿠라도모미와 사이고다카모리,오쿠보도시미치가 들어있었다.

이렇게 소위 명치유신이라는 대정변은 단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