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에 위치한 위도는 위도면에서 가장 큰 섬이다.
복잡한 해안선의 모습이 고슴도치를 닮았다해서 고슴도치 위자를 따서
섬이름을 붙였다 한다.

위도에는 두가지 이미지가 겹친다. 하나는 조선시대때 유배지였다는
어두운 측면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세웠다는 석율도국이 지금의 위도라는 전설이다. 여기에는
길동이가 지상천국을 건설하였다는 밝은 이미지가 담겨있다.

그러나 두 이미지에 공통되는 점은 위도가 당시로서는 외로운 섬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산수가 수려하다는 사실이다. 홍길동은 활빈당을 자처하여
지방수령들의 불의의 재물을 탈취하여 빈민들에게 나누어 준다.
조정에서는 길동을 회유하기 위해 병서판서를 제수한다. 홍길동은
서울에서 판서를 지낸뒤 고국을 떠나 중국 남경으로 가다가 산수가 수려한
율도국을 발견하게되어 율도국의 국왕이 되어 나라를 잘 다스린다는 것으로
끝이 난다.

현재 위도는 변산반도국립공원에 연결되는 해상관광지이고 또
바다낚시터로 유명하다. 위도근해는 연평도 신미도와 함께 서해안의 3대
조기산란장으로 4,5월이면 전국각지의 어선들이 모여서 파시를 이루며 음력
스무나흘은 바다낚시꾼들이 최고수확을 올리는 풍어기로 알려져 서울과
전주 청주등지에서 낚시꾼들이 몰려든다.

1682년(조선조 숙종8년)에 위도면 진리에 두었던 위도관아는
전북유형문화재 제101호이고 대리마을에서 매년 정월초사흗날에 어민들의
풍어와 마을의 평안등을 기원하는 위도띠뱃놀이(원당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부안앞바다의 "서해페리호"침몰사고는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사고해역의 기상악화에도 무리하게 항해를 강행한것을 비롯하여 사고가
난지 이틀이 되어가는데도 그 배에 몇명이나 승선했었는지 조차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는 운항의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으니 감독관청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특히 항해사의 휴가로 갑판장이 키를 잡았었다니
침몰사고가 나지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발생뿐 아니라 해난사고에 있어서도 세계1위라고
한다. 정부당국의 재발방지를 위한 철저한 대책이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