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거래업체입장에서도 공기업은 수요를 독점하는 "큰손"이자 "상전"이다.
예컨대 변압기를 만드는 기업이 있다고 치자. 한전말고는 국내에서 물건을
팔데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공기업과 거래를 터 몇년간 "납품"을 할수
있는 기업은 정상으로 발돋움한다. 공기업과 연을 맺지 못할 경우엔 그저
그런 기업에서 벗어날수 없다.
공기업의 이같은 구매력(Buying Power)은 엄청난 구매물량에서 나온다.
92년 23개 정부투자기관의 물자구매는 4조5천억원이나 된다. 시설공사
5조4천억원을 포함하면 총계약규모가 9조9천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작년에
조달청을 통해 계약한 물량보다 1.3배가 많다. 이렇게 손이 크니 시장에서
휘두르는 파워가 막강할수 밖에 없다. 파워가 막강하다는건 "횡포"또한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얘기와도 통할수 있다.
진입장벽이 그중에서도 가장 큰 횡포중의 하나일게다.
정부투자기관의 총 물자구매액중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한전의
진입장벽은 특히 두텁다.
한전의 본사 납품업체는 9백5개사다. 선정기준은 "공장을 소유하거나
임대한 제조업체"로 간단하다. 그러나 이 회사에 납품하려면 정부로부터
받은 형식승인도 소용이 없고 KS마크도 무용지물일 경우가 있다. 한전의
자체기준, 말하자면 "한전규격"에 합격해야 한다.
한전이 이렇게 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긴하다. 품질관리나 안정적인
거래처를 확보하는데는 한전말마따나 진입장벽이 효과적일게다.
그러나 거래업계의 설명은 영 딴판이다. 전기계량기업계에선 이 회사
거래기업 4사(금성계전 대한전선 풍성전기 태영)를 "한전납품업체
패밀리"로 만들어 7년 넘게 카르텔을 형성해 놓고 있다고 한다. 다른업체의
진입을 가로막으면서 불공정거래를 하고있는 셈이다.
한전에 전기계량기 납품을 시도했던 S전기사장은 이렇게 증언한다.
"품질이 문제가 아니라 한전사람을 모른다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한전의 벽은 너무높았다"
한전에 전기계량기 납품을 시도했다 거절당한 사람이라서 새겨들어야할
점도 없지않지만 이같은 거래관행은 여러가지 해악을 낳는게 사실이다.
우선 말뚝거래업체는 로비만 잘하면 계속 거래가 보장되니 기술개발이
뒷전으로 밀리고 그 결과 품질이 떨어진다. 한전에 변압기를 납품하는
어느 중소기업의 한 임원은 "한전의 규격에 따라 만들어진 중소업체의
주물류 품질이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같다"고 고백한다.
영광 원자력발전소 3호기등 작년에 6개 발전소의 발전설비 기자재를
주문할때는 이런일도 있었다. 국내계약업체의 제작능력을 넘는 물량을
일시에 주문하는 바람에 계약자가 외국에 하도급하여 터빈축을 공급해야만
했다. 이렇게되면 납품업체로선 추가비용이 들어갈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업계의 불만은 정작 다른데 있다. "국외주문은 관련임원이 외국업체와
수입상을 지정하는 것이 관례화돼 있다"
독점기업의 구매엔 또 고가매입등을 통한 특혜제공수법도 있다. 이같은
수법은 감사원 감사결과(92년 정부투자기관결산검사서)를 대충 훑어봐도
알수있다.
한전다음으로 구매물량이 많은 통신공사는 작년에 전화국에 쓸 단말기와
프린터를 시장가격보다 2억7천만원이나 비싸게 구입했다. 토지개발공사는
지난해 모주택조합에 토지를 전매했다. 그런데 이조합이 승인조건을
어기고 토지를 96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팔았는데도 계약해지나 환매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감사원 검사서는 토개공의 계약관계자가 뇌물을 받고 묵인했다고 주기해
놓고 있다.
제3자 업체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있는 "납품업체 패밀리"들이라고 해서
투자기관과의 거래관행에 만족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 납품업체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횡포가 관료적 고압자세다. 서류 서식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정부투자기관에 사무자동화 장치를 납품하는 S기업 C사장은
제품설명서류를 세번이나 다시 해갔다고 말했다. "정부부처에도 납품을
해봤지만 정부투자기관이 더 관료적"이라며 "정승집 머슴이 정승보다 더
설친다"고 씁쓸해 했다.
<안상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