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인 조치나 다름없는 금융실명제가 전환의무기한안에 96%의
전환실적(가명예금기준)을 기록하고 우려했던 현금인출사태도 별로없이
비교적 순조롭게 도입되고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한은자금부와 저축부는
2개월의 전환의무기간동안 매일 새벽1~2시까지 야근하면서 실명제의
조기정착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그러나 정작 한은은 이제부터 고통스런 과제를 풀어가야한다. 바로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일이다. 실명전환의무기간동안 애써 조용히 지냈던
김명호한은총재가 솜씨를 발휘해야할 숙제인 것이다.

김총재는 그간 실명제의 조기정착를 위해 금고문을 열라는 정부의 요청에
장단을 맞추면서 2개월을 지냈다. 물가상승을 우려하는 일부의 지적이
있었지만 김총재는 제목소리내기를 자제했다. 영세기업들을 도와야한다는
주변여건때문에 금고지기가 나서기도 어려웠지만 통화증가율이 3년여만에
최고치로 높아지는 상황이어서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적지않았다.

금융시장도 초기 실명제의 충격에서 벗아나고있는 만큼 김총재도 이제
자의반 타의반으로 느슨했던 돈줄관리의 고삐를 조여야할 할판이다.
태풍의 잔해처럼 물가부담상승의 부담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있다.
풀린 돈이 시간이 지나면서 물가상승을 부추긴다면 덤터기는 그가
뒤집어 쓸 수 밖에 없다.

낙관했던 경제전망이 빗나가고 실명제에 관한한 정책수립보다는
보조기관으로 족해야 했음에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그도 이제부턴
편치않으리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국회재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도 통화면에서의 물가대책을 의원들이 집중
추궁했다. 민자당의 서청원의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의원들이 중앙은행이
과연 물가고삐를 잡을수 있을지 묻고 또 물었다.

종종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시되는게 어쩔수 없는 관행이다.

실명제를 조기에 정착시키기 위해 풍부하게 돈을 풀수밖에 없다는 과정은
일정기간이 지나고 나면 물가상승으로 나타난 결과앞에 퇴색될지 모른다.
그결과에 대한 책임은 한은총재에게 떨어질 공산이 크다.

껄끄러운 재무부와도 능굴능신의 유연한 자세로 잡음없이 지내와 조용한
행보가 오히려 돋보인 김총재. 전환의무기한이 지난 이제부터 그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고광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