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자금성은 높고 두터운 2중의 성벽과 황실의 색깔인 주색의
울타리에 둘려져서 자리잡고 있었다. 남북 1km ,동서로는 7백m 의 황성은
삼층의 대리석 대상에 우뚝 솟은 태화전을 중심으로 수많은 궁전들과 크고
작은 문들이 엄격히 배치되어 좌우대칭 균형을 이루며 그 방이 9천개를
헤아린다고 하니 방2천개로 이루어진 유럽 제일의 베르사유궁도 비할바
못된다. 그러나 그 웅대함과 호화로움도 필자에게는 별로 큰 감명을 주지
못하였다. 그 까닭은 어디서 오는 것이었을까.

그 장중하고 호사를 극한 전각 여기저기에서 한때 7만까지 헤아렸다고
하는 환관들의 망령이 아롱거려서였을까.

자금성은 그 명칭("자"는 천자만이 쓰는 색깔로서 천상의 성좌를 뜻하며
"금"은 금지의 뜻으로 짐을 두려워하라는 의미에서 왔다고 한다)그대로
백성이 감히 넘볼수 없는 황제의 권위를 상징한다.

덕으로 천하를 지배하는 까닭에 천자라 일컬었다고 하지만 백성들에게
있어 황제란 언제나 두려운 존재였다.

일반 민가가 처마를 잇대고 있는 골목을 말하는 호동이 벽에 둘러싸이고
있음도 지난날 중국 정치현실의 실상을 말하여 준다고 할까.

지구상에 사람이 만든 것으로는 유일하게 달에서 보인다고 하는 만리장성
을 눈앞에 하였을 때도 대단하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오랜 세월 그것이
나의 상상속에서 극히 거대한 모습으로 비춰져왔기 때문이었을까. 비슷한
감회는 몇해전 이집트 기제의 피라미드군앞에 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거대한 규모보다도 사막의 이글이글 타는 태양 아래 빛나던 기하학적인
추상미가 오히려 나를 태고의 세계로 유인하는듯 하였다.

자금성이나 만리장성,그리고 피라미드가 기대에 반하여 큰 감동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음은 거대한 것이란 허구를 의미하는 까닭일까. 아니면 모든
것이 지난친 20세기말 문명을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