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유행감각,왕성한 소비욕에다 세계경제와 유행을 선도.창조하는
곳이라는 상징성때문에 사업가라면 누구든지 한번쯤은 기웃거려 보기
마련인 뉴욕은 그러나 대번에 손을 들어버려야 하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물고 뜯기는 격렬한 경쟁,하늘 높은줄 모르는 비싼 임대료뿐 아니라
도대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는 그러한 곳이다.

맨해턴구역 중심부에 있는 센트럴 파크입구 부근의 최고급 호텔들을 끼고
있는 상가지역과 5애비뉴거리,그리고 메디슨 애비뉴의 30여블럭은 그야말로
금싸라기 땅으로 침만 삼키고 돌아서야하는 한많은 거리였다.

그런데 요즈음은 참 많이 변했다.

사방 한자 정도의 넓이에 2백달러가량씩만 부담할수 있다면 이곳에
임대점포를 어렵지 않게 낼수있게 사정은 변했다.

저간의 불경기와 미소매유통업계의 재편 바람이 어찌나 심했던지 이
황금의 거리에 빈 가게들이 드문 드문 생겨났고 임대료도 20%안팎으로
내렸다.

대중적 의류상점들인 갭이나 베네통등은 그간 엄두도 내지 못하던 이곳에
으젓이 점포를 차리고 들어갈수 있었다.

바닥을 벗어 난듯한 불경기 탓일까? 아니면 국제적 유통업계의 장기전략
때문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어쨋든 뉴욕의 황금상가는 요즘 새주인들을
맞느라 제법 바삐 돌아간다.

9월초 개점한 특급 백화점인 바니스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다운타운 18번가에 이미 휼륭한 매장을 갖고 있는 이 회사가 약
1억달러를 쏟아부어 9개층 23만평방피트의 매장을 중산층 주택가인
업타운에 꾸미자 전미 유통업계가 수군거렸다. 뉴욕의 백화점치고
경영난에 빠지지 않은 회사가 없는 판에 대형점포를 새로 냈으니 그럴만도
하다.

아예 문을 닫아버린 대백화점들이 수두룩하고 메이시는 아직도
파산보호중이며,블루밍데일,시어즈등도 숨이 목에 차 있는 상태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바니스는 첫 닷새동안 숨돌릴 사이도 없이
몰려드는 손님들로 6백만달러의 매상을 올렸다. 계획보다 55%를 초과하는
클린 히트를 기록했다.

이변은 여기에 그치질않았다. 이에 질세라 랄프 로렌의 폴로와 리즈
클레어본이 또 새로 문을 열었다.

트럼프타워 1층,찰스 주르당이 있던 곳에는 이탈리아의 구두 명문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들어섰고 이탈리아 최고의 패션하우스의 하나인
막스 마라는 메디슨 88번가의 건물을 아예 사서 들어갔다.

사정바람과 불경기가 어느나라 못지않은 이탈리아인들은 기실 뉴욕을
삼킬듯이 떼지어 몰려들고 있다.

지난 5월 2백40만달러짜리 건물을 단 하룻만에 사버리는등 이탈리아의
의사 변호사등 전문직 부유층은 최근 뉴욕의 임대아파트 호텔등을 대상으로
10억달러이상의 투자를 하고있다고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이에 못지않은 큰 손들이 또 뉴욕에 몰려드는데 이들은홍콩을 중심으로 한
중국인 자본가들이다. 대만계의 한 뉴욕은행은 3년만에 60%의 자산증가를
기록했고 코리아 타운이 있는 플러싱의 목좋은 가게집 주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중국인들로 변해버렸다.

프랑스의 파소나블레는 미국의 노드스트롬과 동업,구치가 있던 5에비뉴
54번가에 남성복 전문점을,그리고 독일 디자이너 볼프강 줄,영국의 존
리치몬드,이탈리아의 듀랑고 골티에와 미국의 테니스 스타 지미 코너스등이
각각 청바지 전문점들을 차리고 있다.

그런가하면 흉칙스럽게 텅텅 비어있던 이스트 빌리지에는 예쁘장한
부틱들이 그리고 6에비뉴 20번가일대에는 큰 할인 판매점들이 들어서는등
뉴욕의 지도가 새로 그려지고 있는 중이다.

금융및 자본동원 중심지로서의 뉴욕도 여전하다.
올 6개월간의 외국기업 신주 발행규모는 63개사의 53억달러,외국의
기채액은 5백9건 4백79억달러에 이른다.

한국도 빠지지 않는다.
삼풍의 케임브리지가 메이시 백화점 앞에 큰 상점을 차렸고 농협마저
신토불이간판을 큼직히 내걸었다.

초호화 상점 갤러리스,오나시스가의 올림픽항공자리등 특급지가 오늘도
비어있다. 줄리아드 음악학교 부근의 아파트는 동양인들에게 항상 인기가
좋은 곳이다.

바뀌는 뉴욕의 지도에 한국몫을 더 넓혀 보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