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과 지난날의 관계 때문에 두사람은 처음에는 마치 요시노부에게
아첨이라도 하는 식으로 얘기를 했으나,자기네는 엄연히 유신정부의
사자인지라,결국은 어젯밤 회의에서의 결정을 사실대로 통고하고,그렇게
이행하도록 설득할 수 밖에 없었다. 괴롭다면 더없이 괴로운 그 역할을
마쓰다이라가 맡아서 했다.

마쓰다이라는 먼저 자기네 두사람이 유신정부의 사자로서 찾아오게 된
점을 널리 이해해 달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머리숙여 정중히 얘기한 다음,

"실은 각하께 사관납지를 권유하러 온게 아니라,어명을 전달하러
왔습니다. 어젯밤 회의에서 결국 어명이 내려졌지요. 조속한 시일내에
사관납지를 어김없이 이행하라는 것입니다. 각하께서 사관납지를 순순히
이행할 경우에는 각하를 새로운 정권에 참여시키는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의결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관납지의 이행여부가 각하의 충성심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
셈입니다. 그점을 깊이 헤아려서 아무쪼록 어명을 따르도록 하십시오.
각하,이미 천하의 대세는 판가름이 난것 같습니다. 각하를 위해서 소생이
진정으로 드리는 말씀이오니 부디 잘못 판단하는 일이 없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렇게 말했다.

요시노부는 안색이 약간 창백해져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입언저리에
엷은 웃을을 떠올리며 말했다.

"고맙소. 그러나 이자리에서 당장 확답을 할수가 없구려. 이미 대정봉환을
선언한 터이니,사관은 이행한 셈이 아니요. 나는 이미 쇼군의 몸이
아니라오. 어제 조정에서 지난날의 모든 직제를 없앴다면서요. 정이
대장군직도 폐지를 했다니,공식적으로도 이제 쇼군은 없어진것 아니요.

그런데 납지의 문제는 좀더 두고 생각해봐야겠소. 납지를 고스란히
이행하면 명실공히 도쿠가와 가문은 문을 닫게 되는데,그런 엄청난 일을
어찌 나 혼자서 당장에 결정할 수가 있겠소. 안 그렇소?"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 말씀드리기가 황공하옵니다만,만약
각하께서 납지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강제로라도 이행토록 한다는게
유신정부 실세들의 생각인듯 합니다. 그점을 참작하셔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강제로 이행토록 한다. 흥!"

요시노부는 여전히 은은한 웃음을 떠올린채 가볍게 코방귀를 뀌었다.
강제로 이행토록 한다는 말은 곧 무력으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이어서
불쾌했던 것이다. 기분이 언짢으면서도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고
코방귀를 퉁기는게 역시 쇼군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