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너에게 나를 보낸다'..지배체제 순응 혹평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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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작가 장정일씨(31)의 장편소설 "너에게 나를 보낸다"(미학사간)가
지배체제에 순응적인 종속문화적 성격을 지녔다는 혹평이 나와 또 한차례
신세대문학 논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평론가 황병하씨(39)는 최근 출간된 "문학정신"11월호(열음사간)에
"반지배문화적 성격과 종속문화적 담론"이란 평론을 기고, 이 소설이
"대중문학을 표방해 반지배문화적 성격을 띠고는 있지만 문학내부 및
사회일반의 역학구조에 관해서는 기존질서에의 수동적 편입을 변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씨의 이러한 견해는 이제까지 신세대작가군에 가해진 비판이 대부분
"표절""청산주의""경박성"등 외피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것과 달리
"탈중심.탈이념"을 표방한 이들의 한계를 정면으로 지적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지난해 9월에 출간된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90년 이후 계속돼온
포스트모더니즘논쟁,표절시비 등에 대한 장씨 나름의 "해명서"로 평가받은
작품. 3백45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까지 신세대작가들에게 쏟아진
비판과 자신의 문학관을 담았다.
표절작가인 "나"와 "이정박",베스트셀러작가로 변신하는 "은행원"등
세작가를 중심으로 "바지입은 여자",두얼굴을 가진 노동투사인 "오만과
자비", 안기부직원인 "색안경" 등 익명의 인물들이 엮어가는 단절된 흐름의
인생유전을 통해 삶의 가변성과 세계의 불확정성을 그렸다.
"나"는 꿈을 꾼 내용을 그대로 소설화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가 남미작가
작품의 표절로 판명돼 당선이 취소된 작가. 똑같은 꿈을 꾸었다는 "바지
입은 여자"가 찾아와 "나"의 위로자가 된다.
그러나 "나"는 "색안경"의 요구에 따라 포르노만 쓴다.
또 다른 작가는 시인 이정박.
그는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했다가 좌절한 후 전업포르노작가로
변신한다.
여덟식구의 가장으로서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은행원"은 "소설쓰기가
보장하는 확실한 금전에 마음을 뺏겨" 대중소설을 써 베스트셀러작가가
된다.
황씨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가 문학의 상업성을 인정하고 시장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문학을 이해해 대중문학의 가능성을 열어보임으로써 반지배문화적
성격을 극단화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독자의 관심에 무관심한 본격문학의 엘리트적 속성에 도전하고 문학의
정치.도덕적 효용성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한 반지배문화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기존질서에의 수동적
편입을 변론해 지배체제에 스스로를 예속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작중인물들이 억압적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의 무의미를 토로하는가
하면 결국 여러가지 모양으로 지배체제의 하부구조에 안착해버리는
염세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것은 지배체제에 순응할 뿐만아니라 이를
묵시적으로 옹호하는 담론이 돼버린다는 것이 황씨의 주장이다.
"나""은행원""바지입은 여자"가 각각 한일남 조사명 정선경 등 실명을
얻으며 찾아낸 정체성이란 것도 결국 허무주의, 감상적 페미니즘, 성의
상품화 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구체화된다.
또 삼류문인들을 일류문인들의 광휘를 이용해 지배계급(문단)의 질서를
뒤흔드는 집단으로 그린 것도 결국 "지배체제를 옹호하는 담론적 수행에
봉사하고 있는 좋은 예"라는 것이 황씨의 논거다.
그러나 황씨의 이러한 비판도 문화유물론적 관점에 입각해있다는 한계가
있다. 문화시학 혹은 신역사주의로 불리는 이 관점하에서 문학은 "역사를
재현하는 행위 속에서 동시대 역사에 개입하는 하나의 문화적 실행"으로
정의된다. 신세대작가들이 스스로의 글쓰기를 항상 해체적 실험으로
인식해왔음에 비추어 볼 때 이 비판이 어떤 방식의 논쟁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권영설기자>
지배체제에 순응적인 종속문화적 성격을 지녔다는 혹평이 나와 또 한차례
신세대문학 논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평론가 황병하씨(39)는 최근 출간된 "문학정신"11월호(열음사간)에
"반지배문화적 성격과 종속문화적 담론"이란 평론을 기고, 이 소설이
"대중문학을 표방해 반지배문화적 성격을 띠고는 있지만 문학내부 및
사회일반의 역학구조에 관해서는 기존질서에의 수동적 편입을 변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씨의 이러한 견해는 이제까지 신세대작가군에 가해진 비판이 대부분
"표절""청산주의""경박성"등 외피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것과 달리
"탈중심.탈이념"을 표방한 이들의 한계를 정면으로 지적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지난해 9월에 출간된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90년 이후 계속돼온
포스트모더니즘논쟁,표절시비 등에 대한 장씨 나름의 "해명서"로 평가받은
작품. 3백45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까지 신세대작가들에게 쏟아진
비판과 자신의 문학관을 담았다.
표절작가인 "나"와 "이정박",베스트셀러작가로 변신하는 "은행원"등
세작가를 중심으로 "바지입은 여자",두얼굴을 가진 노동투사인 "오만과
자비", 안기부직원인 "색안경" 등 익명의 인물들이 엮어가는 단절된 흐름의
인생유전을 통해 삶의 가변성과 세계의 불확정성을 그렸다.
"나"는 꿈을 꾼 내용을 그대로 소설화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가 남미작가
작품의 표절로 판명돼 당선이 취소된 작가. 똑같은 꿈을 꾸었다는 "바지
입은 여자"가 찾아와 "나"의 위로자가 된다.
그러나 "나"는 "색안경"의 요구에 따라 포르노만 쓴다.
또 다른 작가는 시인 이정박.
그는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했다가 좌절한 후 전업포르노작가로
변신한다.
여덟식구의 가장으로서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은행원"은 "소설쓰기가
보장하는 확실한 금전에 마음을 뺏겨" 대중소설을 써 베스트셀러작가가
된다.
황씨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가 문학의 상업성을 인정하고 시장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문학을 이해해 대중문학의 가능성을 열어보임으로써 반지배문화적
성격을 극단화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독자의 관심에 무관심한 본격문학의 엘리트적 속성에 도전하고 문학의
정치.도덕적 효용성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한 반지배문화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기존질서에의 수동적
편입을 변론해 지배체제에 스스로를 예속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작중인물들이 억압적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의 무의미를 토로하는가
하면 결국 여러가지 모양으로 지배체제의 하부구조에 안착해버리는
염세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것은 지배체제에 순응할 뿐만아니라 이를
묵시적으로 옹호하는 담론이 돼버린다는 것이 황씨의 주장이다.
"나""은행원""바지입은 여자"가 각각 한일남 조사명 정선경 등 실명을
얻으며 찾아낸 정체성이란 것도 결국 허무주의, 감상적 페미니즘, 성의
상품화 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구체화된다.
또 삼류문인들을 일류문인들의 광휘를 이용해 지배계급(문단)의 질서를
뒤흔드는 집단으로 그린 것도 결국 "지배체제를 옹호하는 담론적 수행에
봉사하고 있는 좋은 예"라는 것이 황씨의 논거다.
그러나 황씨의 이러한 비판도 문화유물론적 관점에 입각해있다는 한계가
있다. 문화시학 혹은 신역사주의로 불리는 이 관점하에서 문학은 "역사를
재현하는 행위 속에서 동시대 역사에 개입하는 하나의 문화적 실행"으로
정의된다. 신세대작가들이 스스로의 글쓰기를 항상 해체적 실험으로
인식해왔음에 비추어 볼 때 이 비판이 어떤 방식의 논쟁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권영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