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카와내각총리대신전. 택시운임인하를 실현시켜 주십시오. 교토MK그룹
은 7월12일 10% 택시운임인하를 신청, 현재 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을비가 내리는 동경시내를 MK의 선전차는 이같은 문구를 내걸고 달리고
있다.

선전차에 올라탄 주름많은 얼굴의 아오키 사다오(본명 유봉식). 한국에서
도 이미 유명인사가 된 일본경도의 MK택시회장이다.

1928년 경상남도 해안가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관서지역 사학의 명문인
입명 대학을 중퇴했다. 60년부터 택시사업에 손대기 시작, 77년 MK주식회사
를 설립했다. 91년에는 일왕과 장관들의 송영차로도 선정된 바있는 MK택시
는 그룹매출액(92년)이 2백75억엔, 경상이익 7억4천5백만엔을 올리고 있는
짭짤한 기업이다.

아오키회장은 올해로 두번째 택시운임인하를 위해 관계당국에 호소하고
있다. 호소카와총리 취임이후 각분야의 규제완화가 논의의 대상으로
떠오른 가운데 그의 택시운임인하요구도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다. 교토의
택시업계에서는 "미운 오리새끼"로 굳어진지 이미 오래전이다. 그러나
아오키회장에게 있어서는 스스로의 방식이 진정한 택시회사의 바람직한
경영이라는 생각이외에는 없다. MK택시를 한번 타 본 사람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MK택시 4백33대중 어느 차를 타도 차안은 청결하다. 운전사
는 산뜻한 제복과 제모를 착용하고 인사말부터가 여느 택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다.

교토는 원래 고도로 관광객의 발길이 잦은 만큼 MK운전사들이 해주는
관광지소개는 이회사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없는 택시회사라는
명성을 얻게 하고있다.

물론 명성의 이면에는 운전사들을 영국에 보내 어학연수를 시키고 매일
같이 강연회를 열어 교육시켜온 노력이 숨어있다.

뭐니뭐니해도 아오키회장의 경영의 핵심은 그가 만들어놓은 임금체계에
있다.

독자적인 임금체계는 지난 60년 십여대의 택시로 경영을 시작하던 무렵
부터 싹트고 있었다. 24명의 운전사를 고용했는데 너무도 무단결근이나
지각이 많았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분으로 사람을 채용해서 빨리
출근하는 사람순서대로 일을 주면된다"고 충고해줬다.

아오키회장은 이들의 충고를 받아 들이는 대신 운전사들의 가정을 방문
했고 5,6명의 가족이 단칸방에서 살고 있는 주거환경을 보고는 결근이
잦을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다음해 바로 사택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전사원의 내집마련
정책은 지속되고 있다.

임금체계는 69년부터 도입됐다. 일반적인 택시회사는 전체 운임수입을을
운전사와 회사가 일정 비율로 나눠 갖는 방식이었다. MK택시는 그러나
운전사별 운임수입에서 회사전체의 비용과 연료비의 1인당 평균치를 뺀
나머지,즉 영업이익에 해당되는 수입을 운전사가 83% 회사가 17%씩 나누는
방식이었다.

아오키회장 주변 사람들은 "택시회사로서는 재미있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바로 이 "로서는"이라는 부분을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그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한 택시운전사들은 노동자로서 해방되지
않는다"고 그는 주장한다.

아오키회장은 사원의 연수회장을 일부러 초일류호텔이나 여관으로 잡는다.
바로 직전에 좌절의 경험을 맛보고 택시핸들을 잡는 경우가 많은 운전사들
에게 "여러분은 이정도 대우에 어울리는 일을 하고 있다. 사람의 생명을
맡고 있는 것이다. 파일럿과 똑같지 않느냐"며 자신을 불어 넣어준다.

이때문에 아오키회장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MK사원의
가족은 당당하게 남편이나 아버지의 근무처를 주위사람이나 학교에 말할
수있다는 점이다.

아오키회장에게 마지막 남은 꿈은 택시대학을 세우는 일이다. 이미
부지를 확보했고 설계도 끝내놓았다.

그는 택시대학을 세워 서비스란 무엇인가에 대한 교육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이에게 시키고 싶은 것이다.

<박재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