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그늘에선 영원살이 서슬 푸른 눈을 뜨는/고려대장경의 완성된
목판더미들."(서정주의 "고려 고종 소묘"에서)

팔만대장경은 청자와 더불어 고려시대 문화의 정화다.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드높이고 세계문화사에서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과시한 찬연한 유산
이다.

이 대장경은 1232년(고려 고종19년)에 몽고군의 침입으로 현종때 만든
초조대장경이 불타버리자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몽고군을 불력으로 물리치고
자 하는 염원을 담아 국력을 기울여 판각한 것이다. 경판의 정확한 숫자는
아직도 파악되어 있지 않으나 8만여판에 이르고 8만4,000번뇌에 대치하는
8만4,000법문을 수록하고 있어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리어진다.

대장경은 전란중에 강화도의 대장도감과 남해 강화의 분사대장도감에서
16년이 걸려 완성되었다. 이 나무경판의 한개 크기는 가로 67cm 세로 23cm
로 무게는 3.5kg이다. 중국 북송의 관판과 거란본및 초조대장경등의 내용을
비교 검토하여 탈자 오자 누락을 바로 잡아놓아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표준
대장경으로 삼고 있다. 수천만개의 글자가 하나같이 고르고 구양순서체로
양각되어 빼어난 예술품이기도 하다.

이 경판들은 처음엔 강화도성 서문밖의 대장경판당에 수장되었다가 1318년
(충숙왕5년)이후에 선원사로 옮겨졌고 1398년(조선조 태조7년)에 해인사
장경각으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장경각의 건축술은 현대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다. 경판들을
보관하는데 알맞은 습도와 온도가 유지되고 통풍이 잘 되어 745년전의 경판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해인사에 봉안된 뒤 한번도 장경각 밖으로 나온적이 없는 대장경판 3개가
첫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는 9~1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93 책의 해" 기념 "한국의 책문화 특별전"에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불교신도들도 보기 어려운 경판들이고 보면 이번 전시의 백미가 될
것임에 틀림 없다. 이번 전시에 나오는 경판들이 대표급에 속하는 것들이라
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

전쟁에서 물리적으로는 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이기겠다는 고려인의 혼이
담긴 팔만대장경의 600년만의 외출에 새로운 감회가 깃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