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남녀성차..김태연<이대 사범대학장.심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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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의 절반이 여자인데 여자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부당하게 차별
받고 억압당한다면 사회구성원의 절반은 불행한 셈이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구별되는 신체의 차이가 남녀의 특성을 규정짓는다는
운명적 결정론을 우리는 거의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이에따라 남자의 특성을
더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적극적이고 우월하고 목표지향적인 남성에게
여자는 의존해야 한다는 소극성을 강조하게 된다.
따라서 여성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소외될 때가
많다. 이런 결과로 딸이면 유산시키고 아들이면 출산하는 남아선호사상의
팽배로 훨씬 더 많은 숫자의 남자아기가 태어나는 현상을 보면서 이로인해
빚어질 문제의 심각성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녀차를 만드는 것일까. 신체의 차이가 남녀차를
결정짓는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남녀는 같은 특성을 지녀야할
것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남녀의 특징과 역할이 우리와는 다른 곳이
적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신체차가 남녀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사회가 남녀를 어떻게 규정하느냐 하는 것에 의해서 길들여져감을
의미한다. 보부아르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라고
말했듯이 우리사회가 만들어가는 여성상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때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남녀를 막론하고 한 인간속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지닌 양성성으로서 남성 특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남성성을,여성
특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여성성을 나타냄으로써 융통성있게 상황대처를
하게되어 적응력이 더 높다고 한다.
따라서 남녀차,즉 성차가 있다기 보다는 개인차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이세상의 모든 남자가 다 능력있고 적극적이고 우월하지도 않으며 또 이
세상 모든 여자가 다 소극적이고 열등하지도 않다. 그러나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 차이는 있되 차별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받고 억압당한다면 사회구성원의 절반은 불행한 셈이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구별되는 신체의 차이가 남녀의 특성을 규정짓는다는
운명적 결정론을 우리는 거의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이에따라 남자의 특성을
더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적극적이고 우월하고 목표지향적인 남성에게
여자는 의존해야 한다는 소극성을 강조하게 된다.
따라서 여성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소외될 때가
많다. 이런 결과로 딸이면 유산시키고 아들이면 출산하는 남아선호사상의
팽배로 훨씬 더 많은 숫자의 남자아기가 태어나는 현상을 보면서 이로인해
빚어질 문제의 심각성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녀차를 만드는 것일까. 신체의 차이가 남녀차를
결정짓는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남녀는 같은 특성을 지녀야할
것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남녀의 특징과 역할이 우리와는 다른 곳이
적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신체차가 남녀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사회가 남녀를 어떻게 규정하느냐 하는 것에 의해서 길들여져감을
의미한다. 보부아르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라고
말했듯이 우리사회가 만들어가는 여성상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때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남녀를 막론하고 한 인간속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지닌 양성성으로서 남성 특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남성성을,여성
특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여성성을 나타냄으로써 융통성있게 상황대처를
하게되어 적응력이 더 높다고 한다.
따라서 남녀차,즉 성차가 있다기 보다는 개인차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이세상의 모든 남자가 다 능력있고 적극적이고 우월하지도 않으며 또 이
세상 모든 여자가 다 소극적이고 열등하지도 않다. 그러나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 차이는 있되 차별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