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로 금융실명제가 시행된지 3개월이 지났다. 지금까지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중소기업의 부도사태등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및 대규모
은행예금인출사태나 자금의 급격한 이동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혼란등
금융실명제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실명제
실시이후 금융시장의 동향도 적어도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통화동향을 보면 실명제의 여파로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돈을 푼데다 추석자금 수요까지 겹쳐 9월말까지 약 한달반만에
10조원이상이 늘어났으며 이에 따라 9월의 총통화증가율이 21.4%까지 치솟
았다. 그러나 10월이후 점차 환수폭이 늘어나 실명제실시 이전에 비해
지금은 약 5조8,000억원이 늘어난 수준이며 한때 걱정되던 현금보유증가도
9월말 13조8,393억원을 최고로 점차 줄어 실명제실시 두달째인 10월12일
에는 2조1,577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금리동향은 대표적인 실세금리인 회사채 유통수익률이 7월말 13.25%에서
8월말에는 14.36%까지 올랐다가 점차 안정되어 지난 11일 현재 13.05%로
실명제실시이전보다 더 떨어졌다. 양도성 예금증서(CD)의 유통수익률도
8월말에 16.04%를 기록했으나 지금은 13.15%로 안정되었다. 주가도 실명제
실시 발표이후 60포인트가 넘게 떨어졌으나 불과 며칠만에 충격에서 벗어
났으며 지금은 800포인트를 겨냥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금융실명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있다고 일단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있으며 금융실명제의
정착여부는 앞으로의 정책운용에 달려 있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금융자산의 실명화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92년말
기준으로 전금융기관의 가명계좌수및 잔액은105만계좌 2조5,600억원중에서
실명화전환 만료기한인 지난 10월12일 까지도 실명화되지않은 돈은 모두
15만783계좌 738억1,100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문제는 상당수의 실명계좌
가 남의 이름을 빌린 이른바 차명계좌라는 점이며,특히 증권시장의 경우
차명계좌의 비중은 93년4월말 기준으로 적게는 전체 활동계좌 236만7,000여
개의 10%, 많게는 30%로 추산되었다. 이에 비해 차명계좌의 실명화는 456만
여주 1,026억원에 그친 극히 미미한 수준이어서 금융자산의 실명화가 보유
금융자산에 대한 종합과세가 실시되기 전까지는 본격화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는 과세자료의 양성화를 한 보완작업이 부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는 과표노출에 따른 세금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세율인하를 내용
으로 하는 세제개혁안을 발표하였으나 사회간접자본투자등 세출의 대폭적
인 증가와 불경기에 따른 세수의 불확실성때문에 미온적인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무자료거래가 어려워짐에 따라 과표노출을 꺼리는 유통업의 위축,
공직자사정과 중과세까지 겹친 소비성 서비스업의 타격등이 경기침체에
더해져 경기회복세가 약해지고 실업문제가 악화될수 있다는 걱정을 지울수
없다.

셋째로 시중 자금난을 완화하기 위한 통화증발은 풀린 돈이 적재적소에
이용되고 금융기관에 환수되도록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물가불안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풀린 돈을 마구잡이로 환수한다면 근근히
연명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부도사태와 시중금리의 상승이 걱정되는 판
이다. 지난10월중 서울지역의 부도업체수는 383개로 올해들어 최고를 기록
했으며 경기회복이 늦어질수록 한계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중소
기업들의 수는 크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점들 이외에도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해결해야할 사항들이
적지 않다. 한 예로 거래에 따른 영수증을 챙기고 현금거래대신 지급수단
으로 수표나 신용카드의 이용을 보편화하여 신용사회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앞수표를 대신할 은행보증 가계수표의 정착을 서둘러야
하며 걸핏하면 신용카드의 사용한도규제나 가계자금의 대출억제등의 조치를
남발하는 금융정책당국의 자세도 고쳐져야 한다.

증권계좌의 실명화는 기업경영권 확보라는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는데 최근
삼성생명의 기아자동차주식 매집사건을 계기로 이 문제의 심각성과 미묘함
이 또다시 부각되었다고 본다. 또한 정책당국에서는 최근 금융실명제와
연관하여 부동산실명제의 실시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문제도 금융실명제의 정착과 관련하여 앞으로 추목할만한 점이다. 특히
내년에는 부동산투기억제, 재산세과표 현실화등 신경제5개년계획에서 밝힌
방침을 담은 대대적인 세제개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때 실명제에
따른 영향을 충분히 감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흔히 경제는 물흘러가듯이 흘러가게 해야 한다고들 한다. 충격조치라는
암초가 많아서는 물흐름이 왜곡되지 않을수 없다.

금융실명제를 빨리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