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회의 때 요시가쓰는 요시노부로부터 보내온 서찰의 내용을
구두로 보고했다. 물론 삼간을 제거하라는 대목은 빼고서였다.

요시노부의 그 제안에 대하여 선뜻 찬의를 표하는 중신은 없었다. 어명인
납지의 이행에다가 먼저 열번회의의 구성을 조건으로 내세웠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그 조건이 충족되었을 경우에도 납지를 절반만 이행하겠다는
것이니,설령 요시노부에게 동정적이어서 속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도
무방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입밖에 내어 찬성을 할 수가 없었다.

이와쿠라를 비롯한 사이고와 오쿠보 세 사람은 요시노부가 충성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따위 제안을 하겠느냐고,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묵살하려고 들었다. 그러자 그때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그냥 묵살을 해버릴게 아니라,수정 제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정치란 서로
밀고 당기면서 해결점을 찾아가는 것이지,단칼에 싹뚝 자르듯이 결판을
내버리는 게 아니라면서 말이다.

논의 끝에 걸국 납지의 절반을 먼저 이행하면 그다음에 열번회의의 구성을
논의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그러니까 요시노부의 제안에서 그
순서를 바꾼 것이었다. 유신 주체인 세 사람이 크게 양보를 한 셈이었다.
이번에는 총재를 비롯해서 의정이며 메이지 천황의 외조부인 나카야마
다다야스까지가 적극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결정이 되어 그 요지를 통고하는 사신을 다시 오사카로 보내기로
했는데,마쓰다이라와 요시가쓰는 이번에는 끝내 고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삼간을 제거하라는 요구조건은 애당초 묵살해 버리고 회의에
보고를 했으니,그 결정 사항은 말하자면 핵심이 빠진 껍데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 껍데기를 가지고 자기네가 가서 요시노부에게 전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대신 마쓰다이라는 요시노부가 자기 앞으로 서찰을 보냈으니,회의에서의
결정 사항을 이번에는 자기가 서찰로 적어서 자기 부하를 사신으로
보내겠다고 하였다.

결국 그렇게 결말이 나서 마쓰다이라는 요시노부에게 보내는 답서 형식의
서찰을 적었다. 물론 내용은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 그대로였다. 삼간이라는
말은 내비치지도 않았다. 마치 요시노부의 서찰에 그런 말이 들어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마쓰다이라가 보낸 사신을 접견하여 서찰을 받아본 요시노부는, "도대체
이게 뭐야!" 하고 벌컥 화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