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잘하면 천냥 빚도 가린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말이 일상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 말을 할 때는 애써 조심하라는 뜻이다.

그 말의 내용과 뜻이 상대방에게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어형에
따라 그것을 송두리째 망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경어법을 잘못 가려 사용
했을 때다.

한국처럼 경어법이 복잡한 나라가 없다. 일본을 제외한다면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나라이니 말이다. 연령과 친족관계, 사회적 신분과
권력에 따라 그 적용양태가 복잡다단하다. 이를 제대로 가려 사용하지
못하면 "버릇없는 놈"이 되기 십상이다.

외솔 최현배님이 경어법을 분류해 놓은 것을 보면 아주 높임, 예사 높임,
예사 낮춤, 아주 낮춤, 반말등 5단계나 된다. 이러한 어형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신라 향가의 이독자료와 중국 송나라때의 손목이 고려시대의 우리말
365단어를 한자로 적어 놓은 "계림류사"에 나타나고 15세기 중엽의 조선조
시대 한글문헌에서 그 체계의 정연한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그만큼 복잡한
경어법의 뿌리가 깊다는 얘기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전통적인 경어법에서 아주 높임의 경어는 사라지고
두루 높임과 두루 낮춤의 2분 경향을 띠어가고 있으나 아직도 전통적인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의 전통을 무시한채 반말만을 사용해 온 특정 사회가
있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피의자로 심문을 받거나 법정에서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을때 연령이나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수사관이나 검찰관, 재판관으로부터 반말을 들어야만 했다. 언제부터
그러한 관행이 생겼는지 그 연원은 정확히 알수 없으나 관존민비사상이
지배하던 전체주의의 소산으로 추정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때마침 서울형사지법이 이러한 인권 유린적관행을 깨는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경어와 온화하고 품위있는 표준어 사용, 감정적인 말씨 배제, 피고인
에 대한 바람직한 호칭사용등을 내용으로 하는 "형사법정운영 표준례"를
제정하여 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는 것.

서울형사지법의 코페르니쿠스적 결단이야말로 "문민시대개혁"의 방향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일깨워주는 계기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