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있던 가계자금이 증시로 움직이는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로 개인고객을 상대하는 서울변두리 점포에는 개인들이 찾아간
자기앞수표가 며칠 지난뒤 증권사이름이 배서돼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개인들이 자유저축예금 등으로 저축한 돈을 증시에 투자하기위해 빼내가고
있음을 확인할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자금이동은 증권사고객예탁금증가에서 알수 있다. 증권사
고객예탁금은 최근 꾸준히 늘어 20일 현재 3조원을 넘어섰다. 늘어난
자금의 원천중 상당부분은 은행의 가계성자금이라는게 은행사람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이처럼 은행의 가계성저축예금이 이탈해 증권사로 이동하면 한은이 매일
매일 집계하는 "금융권별 자금사정동향"에 나타나야 하지만 여기서는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

이 자금사정동향을 보면 은행의 저축성예금은 이달들어 20일까지
7천9백71억원 증가했다. 대부분의 은행지점에서 가계자금이 빠지고 있다는
데도 통계상으론 늘어나 앞뒤가 안맞는 것같지만 한은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해가 된다.

"서울변두리점포에서는 분명히 가계자금이 빠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빠진자금이 증권사등으로 가면 증권사들이 금고에 돈을 넣어두는게 아니고
곧바로 은행의 요구불예금 등으로 입금합니다. 요구불예금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저축성예금으로 바뀝니다. 전체 은행 저축성예금이
늘어나는것으로 나오는 한은통계에는 예금주가 바뀌는 것까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은관계자의 이같은 얘기는 은행지점장들로부터 확인할수 있다.

개인고객이 대부분인 한일은행대치동의 서삼영지점장. "요즘 은행으로
돌아오는 수표의 뒷면에는 대부분 증권사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증권사가
배서했다는 것은 누군가가 증권사에 입금했다는 것 아닙니까. 실제로
이달들어 보통예금이 4억원정도 줄었습니다"
시내중심가에 있는 조흥은행중앙지점의 최욱재지점장은 기업이나 기관들을
상대하는 점포여서 가계예금변동을 피부로 느끼기 어렵지만 변두리점포
에서는 은행돈이 증시로 옮겨간다는 얘기가 많다고 말한다.
중심가에 있으면서도 기업보다는 영세상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조흥은행
남대문지점은 이달들어 저축성예금이 6억원 줄었다.

가계자금이 감소하지않고 제자리걸음을 보이는 곳도 많다.

이에대해 은행관계자들은 주식시장이 좋아지고 있는데 그원인이 있지만
공모주청약 비율조정과 실명제의 여파도 한몫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공모주청약예금비율이 조정돼 증권금융의 청약비율이 10%에서 50%로
높아짐에 따라 은행권공모주예금주들이 돈을 빼내 증권금융공모주예금에
넣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또 전반적으로 실명제의 충격이 가셨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거래노출을 꺼리는 영세상인들이 매상액의 전부를
예금하지않고 일부는 현금으로 보유하는 경향을 버리지못해 예전보다
저축성예금이 늘지 않는다고도 한다.

국민은행의 실세기준총예금은 이달들어 11일까지 2천6억원 감소 했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주영기부행장보는 "실명전환의무만료기한
(10월12일)이 지난후 일부고객들이 예금을 빼간 것도 한이유"라고 말했다.

가계자금은 은행들이 사활을 걸고 유치하는 예금이어서 증시활황이
은행지점장들에게 그리 반가운 손님만은 아닌듯하다.

<고광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