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아시아문제 전문가인 에즈라 F 보겔교수는 91년 출간된
"네마리 작은용"이란 책에서 한국경제성장에 대한 결론부분을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작은 용들중에서 한국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집중(경제력)이 가장
높고 따라서 가장 야심적 목표(중화학등 첨단부문)를 지니고 있다. 이는
휴전선이북에 있는 예측불허의 정권에게 군사적으로 압도당할 위험과
경제적으로는 바다건너에 있는 경제대국 일본에 예속될 가능성이 높은데
대한 저항이었다.

한국보다 더 열심히 일한 나라는 없고 수공업에서 중공업으로,가난에서
번영으로,무경험의 지도층에서 현대적 입안자.경영자.엔지니어로 그처럼
급속하게 이행된 나라도 없다"

김영삼대통령은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아.태경제협의체(APEC)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지난주 돌아왔다. 군사적으로는 언필칭 한반도의 가장 큰
위협요소인 북한의 핵개발저지에 대한 한미공동의 정책목표를 조율한
성과를 거두었다. 경제적으로는 블록화를 통해 경제열강들이 각축하게되는
새로운 세계질서태동에 아.태지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모색했다.

두가지 다 우리의 역사적 위험에 대한 대처였으며 이것이 위험속에서
급성장했다는 보겔교수의 지적처럼 한국경제가 새로운 돌파력을 장전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기대한다.

김대통령은 귀국후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는 세계를 실감했다"고 밝혔다.
"국제화는 시대의 흐름이며 거기에 우리의 미래가 걸려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또한 "APEC회의에서 우리는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한국은
아.태시대의 중심국가로 떠오르고 있음을 자부할수 있다"고 했다.

근착 타임지는 APEC회의를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는데 마감시간관계도
있었겠지만 한국얘기는 눈에 띠지 않는다. 아.태지도에서 한국이
빠져버린듯한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미국자신의 얘기와 일본 중국문제만
돋보이고 있어 우리는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에 어쩌면 객석에,앉아있는
것이 아니가 하는 의문마저 생긴다. 이것은 김대통령의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경제력의 뒷받침이 없이는 한국의 아.태시대 중심국가론은
희망사항에 그칠수도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김대통령에게 국제화에 대한
열망을 더 강도높게 느끼게 한것도 이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국제화는 제도 규범 정보 기술등을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우리의 국경을 열어 세계로 뻗어나가고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이의 성패여부는 경제력강화에 달려있으며 흥선대원군시대와 같은
자폐증으로는 이를 도모할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제 세계로 마음의 문을 열때다. 그런데 이에 앞서 더욱 시급한 것이
우리 서로서로의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다. 국내에서 정부와 경제계간
소비자와 생산자간,계층간,직종간,산업간,지역간,노사간에 마음을 열지조차
못하면서 세계에 문을 연다는 것은 1층을 짓지않고 고층빌딩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

그것은 무너져내리는 국제화를 의미한다. 지금 우리는 각종의 집단들이
자폐증에 걸려서 남을 탓하기에 바쁜 세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예산국회에서 시한이 임박한 예산심의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부수적 문제로 옥신각신만 거듭하고 있는 것도 서로가 마음을 열지 않고
있는 연유다. 그러면서 어떻게 인종이 다르고 문화와 가치관이 다른
국가들과의 국제화에 임할수 있겠는가. 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다원적
가치관으로 서로에게 관대해지지 않으면 국제화는 공념불에 그칠 우려가
있다.

국제화가 경제력의 문제인만큼 우선 정부와 경제계가 더 폭넓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세계를 받아들일수 있는 전제라고 본다.
경제의 룰을 쥐고 있는 정부와 경제를 몸소 실천하는 경제계가 따로따로
놀면서 눈치나 살피고 제동걸기가 일쑤라면 아예 국제화의 구도자체가
실격이다. 정부와 경제계는 우리가 직면한 역사적 위험에 대한 우군이어야
한다. 서로 마음을 열면 민족의 미래가 걸려있는 국제화에서의 융합을 왜
이뤄낼수 없겠는가. 국제시장에서 뛰는 것은 기업들인데 국내에선 정부가
지배권에 연연하여 고삐를 죄었다 풀었다하면 국제화는 수행될수 없음을
이미 스스로 깨달았으리라고 믿어진다.

김대통령의 APEC정상외교는 국민들간에 국제화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제 구슬을 꿰는 것은 경제주체들간에
마음을 열어 우리의 대표선수들이 마음 든든하게 국제화에 출전하게 하는
일이다.

마침 3.4분기 경제성장률이 6.5%의 완만한 회복세를 보였다는 반가운
조짐도 있다. 이를 이끈 주체들에게 마음을 모아준다면 보겔교수가 지적한
세계속의 한국돌출은 다시한번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