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의 9일 담화는 한국정부가 쌀개방을 공식 인정함을 대내외에
선언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에따라 그동안 주로 비공식적으로 거론돼온
쌀개방과 그 후속조치에 관한 논의가 공론화되어 앞으로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청와대내에서는 김대통령 담화의 시기내용을 놓고 여러가지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초에는 진행중인 협상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최종협상이 끝난후 발표키로 했었다.

그러나 제네바 협상팀이 쌀의 관세화방침을 예상보다 빨리 수용하는 등
"개방불가피"가 조기에 확정됐고 청와대의 "침묵"에 대한 비난여론이 고조
되자 그 시기를 앞당긴것으 로 전해졌다.

김대통령은 이날 담화를 통해 다음 몇가지점에서 자신의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여진다.

우선은 쌀개방이 불가피했다는 점이다.
UR협상의 대세는 이미 기울어가고 있다. 그런 마당에 국민이나 정부가
더이상 "개방불가"에 미련을 갖는다는것은 "국가경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음을 대통령스스로 인정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지금은 개방후의
대책마련에 온국민이 힘을 모아야할때"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대목에서
알 수 있다.

김대통령은 또 이날 담화에서 자신이 지난 대선때 "대통령직을 걸고 쌀
개방을 막겠다"고 한 약속의 불이행을 공식 사과했다.

사실 김대통령의 당시 공약은 처음부터 실현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지적
됐다. 그 약속은 지금까지 농민과 개방반대론자들의 표적이 되고있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언젠가는 정면돌파해야할 딜레마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담화를 통해 "약속불이행"을 사과함으로써 국민의 이해를
얻고 쌀개방이후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고자한 것이다. 이날의
담화문에 여러차례 "사과""죄송""죄책감"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담화에서 쌀문제로 인한 국론분열을 크게 우려했다. 개방
이후의 대책마련에 국민모두가 하나가 돼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쌀개방 문제는 분명 문민정부가 맞고 있는 최대의 시련이다.
농민을 비롯한 소외계층의 불만이 새로운 불을 지필 수 도있다. 김대통령
은 이점을 우려하고 병자호란때의 주화파와 척화파의 논쟁을 거론하며 국민
화합을 촉구한 것이다. 아울러 쌀개방이후의 새로운 농촌상 구현을 위해
농촌살리기 운동에 전국민의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날 담화는 그러나 김대통령의 희망대로 쌀개방과 관련한 "거센 불만"을
잠재울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몇번의 수사적 사과표현이나 담화현장에서
보여준 대통령과 내각,당직자들의 침울한 표정만으로는 위기에 직면한 우리
농촌의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다.

특히 대통령의 담화내용에 무언가 "희망"을 걸었던 농민들로서는 "UR가
우리에게 유리한 점이 더많다"는 표현등이 다소 섭섭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지적도 없지않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볼때 김대통령의 이날 담화는 우리앞에 닥친 현실로
미루어 불가피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의 대응책이나
협상전략이 다소 미흡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놓고
사과몇마디로 양해를 구할 수 있다는 정치인적 사과에도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지금 이 시점에서 과거의 발언을 볼모로 잡아 시비만을 벌일
형편은 아니다.

쌀개방이 기정사실이라면 개방후의 대응책마련이 훨씬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만큼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기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