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이번 전쟁이 서양 여러 나라와 관계가 없다는 겁니까"
"그럼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있지요.있고 말고요"
"어디 얘길 해보세요. 어떤 관계가 있는지,들어봅시다"

롯슈의 푸르스름한 눈웃음이 이제는 완연히 냉소로 느껴져서 이다쿠라는
기분이 꽤나 언짢았다. 그러나 굴욕감을 삼키고,아랫배에 지그시 힘을 주며
말했다.

"우리 막부는 개국을 단행해서 서양제국과 손을 잡은 정권입니다. 여러
조약을 맺은 당사자라 그말 이에요. 그러나 지금 우리와 싸우고 있는
상대방은 존왕양이의 기치를 든 집단입니다. 존왕은 좋아요. 일본사람은
누구나 천황을 섬겨야 하니까요. 그러나 양이는 안된다 그거예요. 개국을
단행한 지도 이미 십수년이 됐는데,지금도 양이라니 말이 됩니까? 공사님은
양이를 용납하시겠어요?"

"허허허."
롯슈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니까 서양을 반대하는 세력과 서양과 손을 잡은 우리가 지금 싸우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어찌 이 전쟁이 서양제국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러고 보니 간접적으로 관련은 있는것 같군요"
"간접적이라니요. 직접적인 문제지요. 만약 우리가 패하고 말것 같으면
서양제국은 양이를 내세우는 정권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지금까지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고 말 터인데,그래도 내정문제라고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실 생각입니까?"

롯슈는 구경을 하는게 아니라,관망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외교관으로서 그런 말을 입밖에 낼 수는 없어서,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명분과 구실이 없는데,무력 개입을
하다니 안될 일이지요"
하고 말했다.

"왜 명분과 구실이 없습니까. 양이의 기치를 든 세력이 일본을 지배하려고
드니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명분이 되고, 구실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정부군이 우리에게 직접 도발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가 먼저
무력을 사용할 수는 없다구요"

"그들이 일본을 지배하게 되면 틀림없이 도발을 할 겁니다. 그때 가서
후회를 하지 마시고,미리 손을 쓰는게 현명한 일이에요"

"염려 마세요. 정치란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라구요. 귀공도 그점을 잘
아실텐데.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