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라운드(UR)는 관세무역일반협정(GATT)가 주관하는 8번째 다자간
무역협상으로 구체적인 실무협상이 본격화 된 것은 지난 87년 부터였다.

88년 몬트리올 각료회의및 89년 4월의 중간합의등을 거쳐 당초 90년12월
브뤼셀 각료회담에서 최종 마무리 될 예정이었던 UR는 미국과
유럽공동체(EC)간의 농산물 보조금 문제에 대한 이견대립으로 마감시한을
넘기고 말았다.

GATT체제의 위기를 느낀 당시 둔켈 사무총장은 91년 12월20일 UR협상의
최대 걸림돌인 농업분야를 비롯,전분야의 협상기준을 제시한 이른바
둔켈초안을 제시,협상을 계속할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

무역협상위원회(TNC)는 92년 1월 이 안을 토대로 구체적인 실무검토에
들어갔으나 일본,EC,캐나다,스위스등이 둔켈안에 대해 수정을 요구,
이때부터 밀고 땡기는 지리한 UR 신경전이 시작됐다.

상황이 신통치 않게 돌아가자 둔켈 총장은 협상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시장개방협상 <>서비스협상 <>법조문화협상 <>합의안수정협상등 4개
핵심분야로나눠 UR협상을 계속 진행 시켜 나갈 것을 제안 했다.

둔켈 총장의 중재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된 UR협상은 각분야별 이해
당사국들의 개별 협상을 통해 수정안을 마련하고 이를 분야별 합동회의에서
취합,최종안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이에앞서 각국은 92년 3월까지 UR에 대한 각국의 입장을 서면으로
제시,협상의 기본자료로 삼았다.

당시 제출된 각국안을 보면 일본은 쌀시장 개방 불가 방침을
비롯,농산물에 대한 관세율을 최대한 높였고 EC는 농업보조금 삭감에
반대하는 프랑스를 설득하는데 실패,삭감률을 공란으로 비워두기도 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미국과 EC간 농산물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3월의 베커 전미국무장관과 자크 들로르 EC 집행위원장간의 회담등 각급별
쌍무 혹은 다자간 회담이 잇달아 열렸다.

그러나 미국과 EC는 UR타결에 필요한 구체적인 합의 도출을 보지 못한채
7월의 뮌헨 G7(서방선진7개국) 정상회담에서 연내합의를 이끌어 내기로
하는 원칙적인 합의만 되풀이했다.

그뒤 미국과 EC는 유지종자분쟁을 계기로 92년 11월 농산물
보조금및보조금을 받는 농산물 수출물량을 감축키로 하는 이른바
블레어하우스협정을 체결했다.

이를 계기로 UR협상은 타결이 임박한 듯한 희망적 분위기로 젖어들었고
각국은 이제 힘겹던 UR 협상이 마지막 고비를 넘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유럽최대 농업국인 프랑스가 블레어하우스협정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섬에 따라 미.EC간 농산물협정에 제동이 걸리면서 협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위기국면을 맞고 말았다.

미.EC간 농산물협정 체결 직후 프랑스의 베레고부아총리가 자국의
이익보호를 위해 블레어하우스협정 수용불가를 선언하고 나선데 이어 롤랑
뒤마 외무장관도 EC집행위가 제출한 농업보조금삭감안에 대해 무효화를
선언했다.

프랑스의 반발로 미.EC간 농산물협상이 다시 교착 상태로 빠져들자
세계각국은 92년 12월 TNC회의에서 UR 연내 타결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시인하고 협상을 93년으로 연기시켰다.

93년 7월 둔켈의 뒤를 이어 피터 서덜랜드가 GATT사무총장에 취임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맞게된 UR협상은 같은달 7일 미.EC.일.캐나다간
사상최대규모의 관세인하합의를 이끌어 내는등 지속적인 물밑작업을
벌여나갔다. 그러나 농산물 교역등 미해결분야의 이견 해소를 위해
미.EC등 양측 협상대표들이 브뤼셀과 워싱턴을 오가며 잇단 회동을
가졌으나 UR의 발목을 잡고 있는 농산물협상에서는 이렇다할 진전이
없었다.

알맹이가 빠진채 겉돌던 UR 협상은 마침내 지난 6-7일 리언 브리튼 EC
무역담당 집행위원과 미키 캔터 미무역대표부(USTR)대표간의 브뤼셀회담을
계기로 농산물분야 합의를 도출해 냄으로써 극적인 사태진전의 실마리를
마련하게 됐다.

미.EC간 브뤼셀회담은 시청각시장(TV및 영화)개방문제와
항공기생산보조금문제로 부분적인 의견대립이 노출되기는 했지만 최대
걸림돌이었던 농산물분야 협상을 종결, UR연내타결 의 역사적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7년여에 걸친 UR대장정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적
방향타였다.

(김병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