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인 범종의 울림에선 환상의 소리를 둘울수 있다. 웅장하고 슬픈 여운
속에서 마음을 맑게하고 원기를 솔구치게 하는 신동이 영혼을 부여 잡는다.
정락속에 묻힌 산사의 종소리가 그렇고 번잡한 도심속에서 울려 퍼지는
제야의 종소리 또한 그렇다.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수많은 범종들이 오늘날에 남아 있지만
에밀레궁만큼 사람들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없다. 그에 얽힌 전설이
서글픈 감회를 일으키게 하는데다 또 그 종소리에 깃든 비감의 여운이
어느 범종도 따를수 없기 때문이다.
신라의 경덕왕이 그의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고 그 공덕이
종소리를 통해 영원히 온나라에 퍼져 국태민안이 지속되기를 발원하기
위해 활동10만의 주조를 몇차례 시도했으나 종이 울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경덕왕이 서거하자 그의 아들인 공혜왕은 어느 스님의 권고로 한
여자의 무남독녀인 딸을 쇠물가마에 넣어 종을 말들었다. 그때에야 그
종이 울렸다. 그 종소리가 어머니를 부르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닮았다
하여 세인들은 에밀레종이라 불렀다. 그 원명은 성덕대왕신종이다.
시인 이원열이 읊은 에미레라는 시는 그 종소리의 애절함을 너무나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에밀레가 운다/에밀레가 운다/시간조차 스며 수없는/무쇠 성속에/갇힌
어린 슬픔이 운다/목이 타서 목이 타서/호소할 곳 없는 기맥힘이
운다//삼천대천도 깨져 버려라/목 놓아 통곡해 여기에 천년/한결같이
뒤끓는 애처로움을/오늘도 포탄모양 불의 가순에/던져선 검붉은 연기를
올린다." 이 좋은 원래 봉덕사에 있었으나 수해로 폐사가 되자 영묘사
봉황대로 전전하다가 경주박물관 건물밖 종각에 보관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 섣달그믐날 제야때마다 울리던 웅장하면서도 맑고 그윽한
에밀레소리가 올해부터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한겨울 종의 조직이
경직되어 있는 상태에서 33번이나 타종하는 것이 국보보존에 좋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때문이라는 것이다.
녹울린 에밀레소리가 박물관경내에 하루에 네번씩 울려퍼지기는 하겠지만
신비의 소리를 직접 들을수 없게 된 것에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