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다름아닌 요시노부와 측근의 중신들이었다. 그렇게 변장을 하고서
심야의 어둠 속으로 일행은 오사카성을 빠져나가버린 것이었다.

비상수단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완전한 기만수법이었던 것이다. 쇼군이
몸소 부하 장병들에게 오사카 사수와 대반격 준비를 명령해 놓고서 자기는
그날밤 측근의 중신들을 거느리고 에도로 가기 위해 감쪽같이 성을 빠져
나가다니.더구나 성문의 파수병에게는 척후의 임무를 띠고 가는 사람들
이라고 새빨간 거짓말까지 하고서 말이다.

쇼군이 아니라,한낱 시정의 사기꾼만도 못한 비열한 행태였다.

성밖 어둠 속으로 사라진 그들 심야의 도망자들은 오사카 항구로 갔다.
그곳 앞바다에 자기네 군함인 가이요마루가 정박해 있었다. 그러나 칠흑
같이 어두운 밤이어서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이 없어 도리없이 눈앞에
휘황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미국 군함으로 배를 저어갔다.

함장은 한밤중에 난데없이 찾아온 사람들이 뜻밖에도 막부의 쇼군 일행
이라는 것을 알자,놀라며 흔쾌히 하룻밤의 유숙을 허락했다. 그리고 호인형
이며 술을 좋아하는 함장은 그들 일행을 위해서 심야의 주연을 베풀어
주었다. 싸움에 져서 도망을 가는 쇼군과 중신들을 측은히 여겨 위로해 준
것이었다.

이튿날 조반까지 잘 얻어먹고,그들은 보트를 얻어타고서 자기네 군함인
가이요마루로 옮아갔다. 그리고 요시노부는 즉시 닻을 올려 에도를 향해
출항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가이요마루의 함장이며 함대사령관인 에노모도다케아키는 그때 상륙중
이었다. 부함장인 사와타로사에몬이 그 명령을 받았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요시노부에게 말했다.

"각하, 이 가이요마루는 막부 해군함대의 기함입니다. 다른 군함들을 지휘
해야 할 기함이 단독으로 탈주를 하다니 될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함대
사령관이며 이 가이요마루의 함장인 에노모도 제독께서 지금 뭍에 올라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출항을 좀 연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무슨
소리를 하고있는 거요? 내 명령인데, 불복종할 생각이오?" "불복종이
아니라, 사정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사정이고 뭐고 군소리 말고, 당장
출항을 하오. 명령이오!"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며 요시노부가 냅다 내뱉자,
옆에 섰던 막부군 총독 오가우치도, "어서 각하의 명령에 따르도록 하오"
하고 눈을 부릅떠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