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책의 해'를 보내며 .. 이상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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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해가 간다. 올해 산 책들 때문에 방이 더 좁아졌다. 볼만한 책들이
올해따라 많이 나왔다거나,독서량이 늘었다거나,그걸 다 읽어서 밑천이
두둑해졌다거나 하는 이야기와는 좀 다르다. 원래가 좀 큰 보자기만한 방
이 계획없이 사들이는 책 차지가 되어버려 방문 앞과 의자 놓인 곳만이
섬같이 남아 아슬아슬하다.
요즘 하고 있는 일의 성격상 일정한 간격으로 새로운 주제가 떨어지고,
그에 따라 자료도 매번 전공분야를 초월해서 잽싸게 확보해야 하는데 소위
말하는 프리랜서라는 신분에는 책을 편하게 빌려볼데가 없다. 국립도서관
은 멀고 네 정류장거리의 시립도서관은 빈약하다.
수시로 서점에 들러 급한대로 가방이 미어져라고 사서 볼수밖에 없는데
당연히 쌓이는 책들이 마음과는 다르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것이다.
책은 더구나 남 주거나 못 버리는 성격,한 해 걸러 이사를 다니는 처지에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 잔소리 듣는 것도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니다.
대책은 없다. 그럴때 서재같은 건 너무 과분해서 공상이라고 한다는 것이
어릴때 살던 적산가옥의 널따란 다락을 떠올린다.
학기가 바뀔때 나는 한 오빠의 등을 탄 다른 오빠의 무등을 타고 또 한
오빠의 부축을 받아 으레 그 다락에 올라가 있었다. 오빠들이 참고서니
교과서니 정리를 해서 릴레이 식으로 올려주면 약속된 자리에 옮겨 쌓고 새
학기에 맞춰 쓸 것을 달라는 대로 가려서 내려보내는 임무가 신났다.
그러나 국어책 명랑소설 철 지난 잡지 같은 것에 빠져들어 어느 순간부터
내가 꼼짝하지 않고 그 릴레이가 멈춘다 싶으면 아래 쪽에서는 야단이 났다.
나중에야 온갖 핀잔과 야유를 당하고 꿀밤을 먹히더라도 당장에는 어쨌든
높은 곳이 유리하니까 배짱을 부렸던 것인지,정말 읽는 재미에 빠졌던 것
인지 생각이 안 난다. 오빠들이 목을 꺾고 올려다 보며 어르고 야단치고
달래다가 어쩔수 없이 잔뜩 일을 벌여놓은 채 쉬러 가버리곤 했다.
그런 다락이 있다면 하는 막연한 공상이 한가지. 그보다 훨씬 구체적인
몽상이 또한가지 있다. 낮이든 밤이든 언제든지 책을 보고 자료를 빌릴수
있는 도서관에 대한 몽상이다.
특히 24시간 편의점을 지나칠 때는 그 몽상이 더욱 간절해진다. 얼마나
좋을까. 대학교에 입학하니까 실험실 열쇠와 도서관 열쇠를 주더라는 어느
교수의 미국 유학 회고기를 읽고는 부러워서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중학교때 누린 특권의 단 맛이 몽상을 부풀리기도 한다. 늘상 들락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는지 사서 선생님이 원할땐 언제든지,또 얼마든지 책을 빌려
가라고 했다.
그때 방종하게 서가를 휩쓸던 특권의 대가로 난독습관이 몸에 배기도
했지만 그렇게 좀 헐렁하게 굴어준 덕분에 여지껏 도서관이 황홀하고 책이
귀한 채로 살게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방문을 열고 선 채로 이렇게 오도가도 못하고 멀뚱히 쌓인 책들을
바라보면서 "24시간 도서관에 대한 몽상"을 새삼 펼치고 있는 순간이면
뭔가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 있다. 그 24시간 도서관 몽상은 거두절미하고
출판사 금고털어내는 소리라는 자각이다. 출판사 편집부 근무 10년 경력의
의리라고나 할까. 우선 돈을 벌어 바탕이 마련돼야 언젠가는(?) 역사에
남을 책도 만들수 있다는 묘한 출판이념에 대해선 아직도 논리정연한 반론
이나 대안이 서지 않지만,답답하고 딱한 그쪽사정도 내 방 형편 못지 않다
는 걸 알아서 하는 소치이겠다.
그속에 길이 있다는 책,책의 해에 내 방 밖에서도 한치 앞길이 안보이는
답답한 일이 많았다. 책을 좋아하고 또 필요하니까라고 중얼거리며 몽상
에나 기대어 얼버무리면서 내가 저지른 잘못처럼 농사를 지은 지가 5천년
이니까 라고 중얼거리고만 있었던 대가가 이한 해의 끄트머리를 한없이
우울하게 한다.
올해따라 많이 나왔다거나,독서량이 늘었다거나,그걸 다 읽어서 밑천이
두둑해졌다거나 하는 이야기와는 좀 다르다. 원래가 좀 큰 보자기만한 방
이 계획없이 사들이는 책 차지가 되어버려 방문 앞과 의자 놓인 곳만이
섬같이 남아 아슬아슬하다.
요즘 하고 있는 일의 성격상 일정한 간격으로 새로운 주제가 떨어지고,
그에 따라 자료도 매번 전공분야를 초월해서 잽싸게 확보해야 하는데 소위
말하는 프리랜서라는 신분에는 책을 편하게 빌려볼데가 없다. 국립도서관
은 멀고 네 정류장거리의 시립도서관은 빈약하다.
수시로 서점에 들러 급한대로 가방이 미어져라고 사서 볼수밖에 없는데
당연히 쌓이는 책들이 마음과는 다르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것이다.
책은 더구나 남 주거나 못 버리는 성격,한 해 걸러 이사를 다니는 처지에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 잔소리 듣는 것도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니다.
대책은 없다. 그럴때 서재같은 건 너무 과분해서 공상이라고 한다는 것이
어릴때 살던 적산가옥의 널따란 다락을 떠올린다.
학기가 바뀔때 나는 한 오빠의 등을 탄 다른 오빠의 무등을 타고 또 한
오빠의 부축을 받아 으레 그 다락에 올라가 있었다. 오빠들이 참고서니
교과서니 정리를 해서 릴레이 식으로 올려주면 약속된 자리에 옮겨 쌓고 새
학기에 맞춰 쓸 것을 달라는 대로 가려서 내려보내는 임무가 신났다.
그러나 국어책 명랑소설 철 지난 잡지 같은 것에 빠져들어 어느 순간부터
내가 꼼짝하지 않고 그 릴레이가 멈춘다 싶으면 아래 쪽에서는 야단이 났다.
나중에야 온갖 핀잔과 야유를 당하고 꿀밤을 먹히더라도 당장에는 어쨌든
높은 곳이 유리하니까 배짱을 부렸던 것인지,정말 읽는 재미에 빠졌던 것
인지 생각이 안 난다. 오빠들이 목을 꺾고 올려다 보며 어르고 야단치고
달래다가 어쩔수 없이 잔뜩 일을 벌여놓은 채 쉬러 가버리곤 했다.
그런 다락이 있다면 하는 막연한 공상이 한가지. 그보다 훨씬 구체적인
몽상이 또한가지 있다. 낮이든 밤이든 언제든지 책을 보고 자료를 빌릴수
있는 도서관에 대한 몽상이다.
특히 24시간 편의점을 지나칠 때는 그 몽상이 더욱 간절해진다. 얼마나
좋을까. 대학교에 입학하니까 실험실 열쇠와 도서관 열쇠를 주더라는 어느
교수의 미국 유학 회고기를 읽고는 부러워서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중학교때 누린 특권의 단 맛이 몽상을 부풀리기도 한다. 늘상 들락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는지 사서 선생님이 원할땐 언제든지,또 얼마든지 책을 빌려
가라고 했다.
그때 방종하게 서가를 휩쓸던 특권의 대가로 난독습관이 몸에 배기도
했지만 그렇게 좀 헐렁하게 굴어준 덕분에 여지껏 도서관이 황홀하고 책이
귀한 채로 살게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방문을 열고 선 채로 이렇게 오도가도 못하고 멀뚱히 쌓인 책들을
바라보면서 "24시간 도서관에 대한 몽상"을 새삼 펼치고 있는 순간이면
뭔가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 있다. 그 24시간 도서관 몽상은 거두절미하고
출판사 금고털어내는 소리라는 자각이다. 출판사 편집부 근무 10년 경력의
의리라고나 할까. 우선 돈을 벌어 바탕이 마련돼야 언젠가는(?) 역사에
남을 책도 만들수 있다는 묘한 출판이념에 대해선 아직도 논리정연한 반론
이나 대안이 서지 않지만,답답하고 딱한 그쪽사정도 내 방 형편 못지 않다
는 걸 알아서 하는 소치이겠다.
그속에 길이 있다는 책,책의 해에 내 방 밖에서도 한치 앞길이 안보이는
답답한 일이 많았다. 책을 좋아하고 또 필요하니까라고 중얼거리며 몽상
에나 기대어 얼버무리면서 내가 저지른 잘못처럼 농사를 지은 지가 5천년
이니까 라고 중얼거리고만 있었던 대가가 이한 해의 끄트머리를 한없이
우울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