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기술및 예.체능계 전문학원. 96년 외국어및 입시계 일반학원."

정부가 지난해 7월 신경제 정책의 외국인 투자 5개년 예시계획에 따라
내놓은 교육시장 개방 일정표이다. 97년께부터는 대학도 문을 열어야 할
것으로 일정을 잡아놓고 있다. 유별난 "교육열"덕분에 낙후된 교육시설과
부실한 교육프로그램을 가지고도 꾸려나갈 수 있었던 국내 교육기관들의
무임승차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막대한 자본과 탄탄한 교육
시스템을 앞세워 국내시장을 파고드는 선진국의 유수교육기관들과 싸워
이기려면 그만큼의 "댓가"를 치러야 하는 때가 온 셈이다.

한국 학원총연합회 UR대책위원장 송석호씨(S외국어 학원장)는 요즘
개방이 코앞에 닥쳤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학원과
합작을 모색하기 위한 외국 교육기관 실무자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진
것이다. UR대책위원장이라는 직함때문에 학원 원장들이 송위원장
앞에서는 쉬쉬 하는데도 어느학원에 누가 다녀갔느니 하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송위원장은 며칠전 일본에 사는 친구로 부터 더욱 정신이 번쩍드는
소식을들었다. 일본에서 제법 큰 외국어 학원을 경영하는 일본인을
만났는데 송위원장이 경영하는 S외국어 학원의 매출규모부터 수강생
숫자까지 줄줄이 꿰고있더라는 것이다. 재작년과 작년 두해남짓 학원
시장 조사차 한국을 다녀간 일본인의 숫자가 만만치 않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벌써 이정도로 훤히 파악하고 있으리라곤 짐작하지 못했다.

"미국과 호주에서는 어학및 직업기술, EC가 요리 패션등 기술분야,
일본이입시계 학원을 노리고 있지요. 국내 학원과 합작을 한다고
하더라도 교묘한 경영술에 휘말려 국내 학원이 차지할 수 있는 몫이
줄어들 것입니다" 송원장은 개방의 부정적 측면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미국인 강사의 생생한원어발음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 모대학 부설
랭귀지 스쿨 한국 분교가 매달 밀려드는 수강생으로 아우성을 치는
모습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기에 따르는 문화적
침투, 국내학원의 80-90%를 점하는 영세학원들의 연쇄도산, 외국인
강사에 밀려 길거리로 쫓겨나는 내국인 강사들의 실업난, 외화의 해외
유출..

한국교육개발원의 강무석박사는 이에대해 긍정적인 측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국제화시대의 중요한 도구랄 수 있는 외국어를
좀더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다든지, 국내 학원들을 자극시켜 경쟁력
제고의 기회를 준다는 점은 받아들일 만 합니다. 특히 선진 교육기관의
앞선 시설과 학습기자재 등은 우리에게 잇점으로 작용할 수 도 있지요"
강박사는 그러나 "철저한준비와 치밀한 개방전략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육부에서는 이때문에 부분개방의 수위를 어디에 맞출것인지를 놓고
고심하고있다. 95년부터 교육시장의 문이 열리기는 하지만 2000년까지는
단계적인 부분개방만을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내년 3월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외국인 투자인가 기준"이 곧 우리의 교육시장개방
전략의 핵심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부는 현재 외국의 전면
적인 직접투자를 제한하기위해 내.외국인 합작비율을 50대50으로 하고
외국인 강사나 직원의 수도50%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초안을 잡아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강과목별로도 피해가 적을 부분부터 선별 개방할 계획이다. 예컨대
기술계중에서도 통신, 원자력분야 등 국내에 학원이 개설돼 있지 않고
기술이 뒤쳐진분야부터 개방해 국제화 개방화의 잇점을 최대한 살린다는
전략이다.

한편으로는 부실학원을 양성해 온 학원관련법도 대폭 손질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학원의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수강료
자율화,학원의 법인화등을 통해 학원간의 통합과 대형화를 유도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이와함께 아직 개방일정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96년이후 개방될 것으로 보이는 대학의 대해서도 대책마련에 착수했다.
외국의 대학들에 비해 경쟁력이 턱없이 뒤떨어지는 국내 대학의 형편
에서 무분별한 교육열까지 가세해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빚어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수강료와 학원갯수, 수강생수 등을 토대로 교육부가 추정하고 있는
학원의 연간 시장규모는 약 2조원. 외국교육기관의 시장잠식이 이
가운데 얼마만큼이나 될 지는 지금으로선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대학시장이 개방된이후 외국대학이 어떤 형태로 국내에 상륙할지
구체적으로 조사된 바도 없다.

"보호막"이 걷힌 국내 교육이 개방이라는 기로에서 국제화로 진일보
할 것인지 경제.문화적인종속의 길을 걸을 것인지는 향후1년여 기간
동안 얼마나 치밀한 개방전략을 짤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