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 나의 직위는 차장이었으나 조사1부장 역할을 맡고 있었다. 당시
국가경제정책입안에 필요한 국민경제지표를 정비하는 작업이 주업무였다.

한국은행조사부는 그당시 유일한 경제연구및 조사기관으로서 금융 물가
생계비 수출입 산업생산통계등을 작성하고 국민계정중 국민총생산
국민총지출 분배국민소득 국제수지 투입산출표등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저축에 관한 통계는 부족한 형편이었다.

당시 한국의 경제사정은 외자는 차관으로 조달했으나 기업투자에 필요한
내자는 국민저축을 재원으로 조달해야 했다. 따라서 경제주체별
저축성향을 추계,저축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가의 저축주체는 가계(봉급생활자와 노임생활자)와 기업(이윤소득
자본소득법인과 개인기업),그리고 정부등 3자이며 따라서 국민총저축은
가계저축 기업저축 정부저축으로 구성된다.

저축은 투자와 연관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자금순환표"를 만들어 내놓았다. 당시 일본이 IMF기준에 따라
국민총저축을 추계 작성한것을 참고로 금융통계를 맡고있던 장현규
이상근 박동준씨가 6개월간의 작업끝에 자금순환표를 완성했다.

나는 자금순환표의 추계과정에서 가계저축이 금융기관에 예치되고 대출을
통해 기업투자로 이어지는 자금의 흐름을 한눈에 볼수있게 플로차트를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게되었다.

첫째 66년 저축추계 수치에 따르면 국민총저축에서 가계저축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이며 기업저축은 70%에 달한다는 사실이었다.

정부저축은 10%정도의 비중이었다. 66년이전에는 국민총저축률의
대GNP비율이 5~8%수준이었으나 그간의 경제발전이 이 비율을 66년 13%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봉급생활자와 노임생활자로 구성된 가계는
우리국민 모두가 경험했듯이 "박봉과 저임금"으로 그날그날을 겨우 넘기고
있던 시대라 저축능력이 없었다.

기업은 법인이든 개인기업이든 간에 사업이윤이 있어야 존립할수 있으며
기업이윤과 재산소득이 기업저축이라는 점에서 기업저축이 국민소득에
점하는 비중이 70%정도 였다는것은 당연한 이치였으나 저축추계를
해보기전에는 이사실을 몰랐다.

둘째는 후진국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금리를 선진국의 5%수준보다 높은
30%정도로 유지해야 국민저축이 증가,내자조달이 가능하다는
선진국경제학자들의 주장이 틀렸다는 점이다. 당시 우리나라도 이런
주장에 따라 64년 금리를 현실화한다며 30%로 인상하기도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은 당초 의도에서 크게 빗나갔다.

즉 금리를 인상한다고 해서 박봉과 저임의 가계가 저축을 늘릴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또 기업은 고금리부담으로 인해 이윤이 감소하고 손실이
발생,기업저축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가계와 기업 저축의
구성이 불균형한 상황에서 금리인상 정책은 저축증대는 커녕 저축감소의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셋째 경제발전으로 가계와 기업저축비중이 50대50으로 균형을 이룬다해도
금리인상에 따른 가계저축 증가액이 기업저축 감소액을 만회하고도
남는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이다.

넷째 국민총투자(I)와 국민총저축(S)은 사후적으로 볼때 같다는 케인즈의
저축투자공식(I=S)에 비추어 보면 금리가 높아 기업이 투자를 감소시키면
금리인상으로 증가한 가계저축은 쓸모없는 금전저축이라는것도 알게되었다.
케인즈는 투자가 감소하면 저축도 줄어든다는 진리를 위의 공식으로 증명한
셈이다.

국민저축에 기여하는 "기업저축의 중요성"을 외면하고있는 경제학자들이
남미각국으로 하여금 1천%의 고금리가 예금을 1천% 증가시켜도 국민투자는
5%,저축률도 5%에 머무는 고금리의 악순환에 빠지게 한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